[더오래]옛 여인의 장신구에 그려진 박쥐가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2021.07.18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7)

근정전 천장 칠조룡. [사진 이향우]

근정전 천장 칠조룡. [사진 이향우]

용, 하늘을 날다

동양 문화권에서 매우 신성시 되어왔던 상상의 동물인 용은 동양인의 생활 미술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동물이다. 옛날부터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리 전통문양으로 나타나는 용은 서양식 표현의 ‘dragon’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양 동화에서 기사는 못된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한다. 우리의 용은 서양인이 상상해 낸 성질 고약하고 입으로는 불을 뿜고, 날개로 퍼덕거리며 무겁게 나는 악당 드래곤이 아니다. 드래곤 중에 귀엽고 착한 아이는 한국인이 만든 ‘뽀로로’ 친구 ‘통통이’나 디즈니 만화 ‘슈렉’에 나오는 초록 드래곤 밖에 없다.

동양의 용은 실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천변만화의 능력을 가진 동물로 그려졌다. 용은 81개의 비늘을 가진 양(陽)의 동물로 그려졌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고 구름을 타고 비를 부르며 용주(龍珠)를 가졌다. 용이 가진 81개의 비늘은 양의 수인 9가 둘 겹친 극양(極陽)의 수이다. 그리고 용의 턱 밑에는 길이가 한자나 되는 비늘 하나가 거꾸로 나있다. 역린(逆鱗), 늘 점잖은 용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위는 곧 역린이었다.

덕수궁 유현문 홍예 위의 꽃담에 새겨진 운룡문(雲龍文)은 용이 구름을 두르고 승천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궁궐 정전 천장 한복판의 닫집에는 구름 속을 유영하는 운룡이 그 웅혼한 기상을 드러내 왕의 권위를 수호하고 있다. 만기(萬機)는 국왕의 바쁜 정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공식적인 정무에는 국새를 사용하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글이나 그림에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개인 인장을 사용했다. 헌종이 썼던 왕의 개인 인장 만기여가(萬機餘暇)에는 용이 새겨져 있는데 그 서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한 마리 운룡을 새긴 헌종의 옥돌 인장은 인장 자체의 재질과 형태 뿐 아니라 운룡의 전체 비례도 완벽하다. 국왕이 사용했던 품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오조룡이 느릿하게 만기여가를 한 바퀴 돌아 휘감는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 십장생 굴뚝과 각 문의 위에 있는 용 문양은 그러한 용의 전체 모습이라기보다는 정면의 모습만 표현해 벽사의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은 그동안 이러한 형태의 문양전은 대부분 일본식 표현대로 귀면(鬼面)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단순한 도깨비나 귀신형상이라고 보기에는 그 상징성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원룡 선생의 지적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이 우리의 정서에 더 가깝다. 용은 그 모습이 변화무쌍해 각기 다른 성격과 모양을 한 아들을 아홉 두었다. 비희(贔屭), 이문(螭吻), 치미(鴟尾), 포뢰(蒲牢), 폐안(狴犴), 도철(饕餮), 공복(蚣蝮), 애자(睚眥), 산예(狻猊), 초도(椒圖)이다. 그리고 용은 그 성격만큼이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나타났다.

궁궐의 용 문양은 근정전 보개천장의 칠조룡이 있다. 『경복궁 영건일기』에는 근정전 보개천장과 용상의 닫집에 용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덕수궁 중화전에는 답도와 보개천장 어좌위의 닫집에 모두 용 조각을 설치했다. 왕이 입는 일상복을 용포라하고 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 한다. 곤룡포에는 가슴과 등 어깨에 오조룡을 수놓은 용보를 부착했다. 용보에 표현하는 용은 정면을 그린 모습이다.

봉황(鳳凰)

덕수궁 유현문 봉황. [사진 이향우]

덕수궁 유현문 봉황. [사진 이향우]

사령 중에서도 봉황은 예로부터 용과 함께 상서로움과 권위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뭇 새들의 왕인 봉황은 전설 속의 신조(神鳥)로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오색에 키가 육척에 이른다고 했다. 봉(鳳)이 수컷이고 황(凰)이 암컷으로, 암수가 함께 나타나며 오동나무 숲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으며, 산 것을 먹지 않고 신령한 샘물을 먹으며 산다. 봉황은 덕망 있는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나타나고 난세가 되어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라진다고 했다. 이와 같이 봉황은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상서로운 영물로 여겨져 궁궐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궁궐에 봉황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주작(朱雀)은 사방신의 하나로 남쪽 방위에 해당하는 붉은 색을 띄고 있다. 궁궐 꽃담의 주작과 봉황은 사실상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꽃담의 색이 두 새의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모두 상상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채색화가 아닌 경우에는 뚜렷하게 구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박쥐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 박쥐. [사진 이향우]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 박쥐. [사진 이향우]

박쥐 문양은 경복궁 굴뚝의 꽃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박쥐가 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긍정적 의미의 박쥐를 문양으로 사용해왔다. 박쥐는 동양에서는 긍정의 상징으로 여러 분야에 적용되는 것과 달리 서양에는 부정의 의미로 인식되는 동물이다. 한자 문화권인 동양에서 박쥐의 한자식 표기는 편복(蝙蝠)이다. 박쥐 ‘복(蝠)’자는 ‘복(福)’자와 음이 같아서 복(福)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박쥐는 또한 오래 산다고 해서 장수를 의미하기도 하며 다섯 마리의 박쥐는 장수(長壽), 부귀(富貴),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오복(五福)을 나타낸다. 우리 옛 여인들의 장신구 뿐 아니라 집의 건축 구조물 장식에도 박쥐는 등장한다. 여성의 장신구에 박쥐 문양으로 장식하거나 기물에 박쥐를 그려 넣고 베갯모에 박쥐를 수놓는 이유는 박쥐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에 의미를 부여하여 다산(多産)과 복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궁궐에 가면 건축 장식 요소로 곳곳에서 박쥐문양을 발견 할 수 있는데 굴뚝이나 벽면 마루 난간 등에 수많은 박쥐가 숨어있다.

서양에서도 박쥐의 의미는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부정적 이미지로 단정되기보다 다산과 강한 생명력을 의미했다.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의 그림에 박쥐가 그려져 있는 것도 탄생과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박쥐는 악마를 상징하기도 했고, 지옥이나 암흑의 힘으로 보았다. 박쥐가 날아 내려오면 마녀의 시간이 온다고 생각했고, 박쥐에게 머리를 차이면 액운이 닥치고, 박쥐가 집에 들어오면 죽음의 전조로 여겼다. 서양의 박쥐가 그나마 긍정적으로 표현된 이미지는 영화 ‘배트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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