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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궁궐 꽃담에 그려진 영지버섯, 진시황의 그 불로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6)

당초(唐草)

경복궁 교태전 건순문. [사진 이향우]

경복궁 교태전 건순문. [사진 이향우]

서초(瑞草)라고도 부르는 당초는 원래 덩굴 식물이다. 겨울이 지나 새움 트는 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창과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궁궐의 꽃담뿐 아니라 돌계단이나 문기둥에서도 당초문양을 볼 수 있으며 옷의 문양이나 장신구의 문양으로도 많이 다자인 되어 왔다. 중국 당나라를 거쳐 극동지역의 한자 문화권에 전파된 줄기 형태의 식물문양을 당초문이라고 부른다. 인동당초(忍冬唐草)라는 명칭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새움을 틔우는 당초 덩굴의 강인한 생명력에서 유래한다.

당초문양은 고대 이슬람의 전통문양인 아라베스크 문양에서 기원한다. 아라베스크는 양식화한 식물 모티브와 줄기 등을 뜻하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 지중해적 유산으로 이슬람에서 기하학적 문양과 함께 양식화했다.

불로초(不老草)

창덕궁 승화루 만월문(포도와 불로초). [사진 이향우]

창덕궁 승화루 만월문(포도와 불로초). [사진 이향우]

불로초는 말 그대로 인간이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불사의 선약이다. 불로초는 복숭아와 함께 불로장생의 불사약으로 알려졌다. 옛날 중국의 시황제는 자신의 불로불사를 위해 서불(徐市)에게 명해 동남동녀 오백 명을 이끌고 동해의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던 아방궁에서 불로장생을 누리지 못한 채 50에 죽었다.

영지(靈芝)와 비슷한 형태로 그려지는 불로초는 모양이 여의(如意)와 비슷하기 때문에 장수와 여원을 대표하는 길상이 되었다. 진시황이 그토록 구하려고 애썼던 불노초가 경복궁 담장의 꽃담 여기저기에 있다. 궁궐 꽃담의 불로초는 영지버섯으로 그려지는데 그 모양이 여의를 닮았고 마치 상서로운 구름이 한데 모이는 것 같다고 여의운(如意雲)이라고도 불렀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사진 이향우]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사진 이향우]

십장생(十長生)
자경전의 뒷마당으로 가면 십장생 굴뚝이 있다. 말 그대로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십장생 문양으로 벽면 치장을 한 아름다운 굴뚝이다. 십장생 굴뚝은 열 개의 연도를 싸고 있는 굴뚝의 벽체 면을 화폭 삼아 십장생을 주제로 문양을 꾸몄다. 십장생은 해, 구름, 산, 바위, 물, 사슴, 학, 거북, 소나무, 불로초 등 상서로운 생물과 무생물을 장수의 의미로 그려 인간의 염원인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그림의 열 가지 소재이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궁궐에 있는 굴뚝 중 조형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굴뚝 벽체 중심의 벽면에는 십장생이 있고 위와 아래에는 용, 학, 불가사리가 있다. 중심 벽면에는 십장생 외에도 또 다른 소재가 보이는데 오른편 대나무 옆으로는 연꽃과 포도, 새와 연이 있는 물가 풍경이 있고, 왼편의 소나무 옆에는 국화 한 송이가 여백을 메우고 있다.

십장생의 소재 중 해는 우주만물 생명의 근원이고 구름은 상서로운 기운을 불러오며, 사람이 좋은 일을 하고 죽으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했다. 산과 바위는 굳건하고 변함이 없으며 물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슴은 장수하고 항상 무리 지어 살며 성정이 온화해 우정을 의미하고, 사슴의 뿔은 벼슬을 뜻하는 관을 연상시킨다. 육지와 물을 자유로 다니는 거북은 입에서 서기를 뿜어내고, 불로초는 땅 위에 여기저기 흔하게 피어 있다. 굴뚝의 윗면 두 개의 작은 화면에는 천 년을 산다는 학이 불로초(不老草)를 입에 물고 마주 보며 날고 있다. 고결한 학의 날개는 백설 같아서 진흙에도 더럽히지 않는다. 그리고 십장생 풍경 옆으로는 푸른 대나무, 새와 원앙이 있는 연못, 포도 넝쿨이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달았고, 왼편 끝에는 소나무의 푸른 그늘아래 국화 향기 그윽한 풍경이 펼쳐진다. 십장생은 이렇듯 꽃담뿐 아니라 병풍 그림으로 그려져 인간세계의 소망을 대변했다.

초화문(草花)
초화문은 각종 식물의 모양을 묘사해 도안화한 장식문양이다. 초화문 형식은 사실적인 것도 있고 추상화하는 등 다양한데 대부분 잔잔한 풀꽃이나 덩굴이 어우러져 있다. 매화나 국화, 모란 등 특정한 주제를 두지 않고 연속무늬를 이루듯 꽃과 길상문이 벽면을 가득 채워 행복을 기원했다.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석복헌 암막새의 초화문과 승화루 쪽 만월문(滿月門) 꽃담장에 초화문이 보인다.

난초(蘭)
난초는 사군자 중 여름을 상징하는 꽃이다. 예부터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고고하게 향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세속의 이욕과 공명에 초연한 고결한 선비의 마음을 나타낸다 하여 유곡가인(幽谷佳人) 또는 군자향(君子香)이라고 불리었다. 정절과 충성심을 상징하며 문인화의 소재로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연(蓮)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 중 동쪽. [사진 이향우]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 중 동쪽. [사진 이향우]

창덕궁 낙선재 뒤편 담장 귀갑문 안의 연화. [사진 이향우]

창덕궁 낙선재 뒤편 담장 귀갑문 안의 연화. [사진 이향우]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청초한 꽃을 피우는 고귀함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 송나라의 주무숙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흙탕 속에서 나오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잔잔한 파도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고 했다. 민간에서는 연생귀자(連生貴子), 즉 연이어 피는 연꽃의 생태에서 연유한 의미로 빠른 시기에 아들을 연이어 얻는다고 해석했다. 꽃이 진후 연방에는 많은 씨가 맺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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