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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 품는 나라 만들 것” 최재형, 출마 전 국민의힘 입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범생이인 줄 알았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야권 대선판을 흔들어 놨다.”

속전속결 행보, 윤석열과 차별화 #일각 “윤석열 독주 야권 구도 요동” #감사원 떠난지 17일 만…평당원으로 #최 “정권교체 이룰 중심은 제1야당” #당내 우군 조기 선점할 기회 확보 #여당 “헌정사에 아주 안 좋은 사례”

범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돼 온 최 전 원장이 15일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당 중진 의원이 내놓은 평이다. 최 전 원장의 입당은 ‘범생이의 대반전’으로 표현될 만큼 전격적이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이 1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준석 대표의 도움으로 모바일 입당원서를 작성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이 1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준석 대표의 도움으로 모바일 입당원서를 작성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그는 이날 오전 10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30분간 비공개 회동한 뒤 “오늘 평당원으로 입당한다”고 선언했다. 불과 30분 뒤 당사에서 열린 입당 행사에서 이 대표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지도부도 놀랄 정도로 속전속결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헌정사에 아주 안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한 송영길 대표를 비롯해 대선주자 대부분이 나서 “감사원 배신” 등 격한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 전 원장은 입당 선언 뒤 취재진과 만나 “당 밖에서 비판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정당 안에서 정치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바른 생각”이라고 입당 이유를 밝혔다. 이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또 “나라가 너무 분열돼 있고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라고 했다.

이날 평당원 입당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입당 행사에서 최 전 원장과 팔꿈치를 맞대고 인사한 이 대표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대표=“모바일과 종이(입당원서) 당원 가입 중 어떤 걸 선호하세요?”

▶최 전 원장=“모바일로 하시죠.”

이 대표는 본인의 명함을 꺼내 뒷면에 인쇄된 QR코드를 보여줬고, 최 전 원장이 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스캔해 당원 가입을 완료했다.

최재형, 이준석 명함 뒷면 QR코드 찍고 ‘모바일 입당’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 둘째)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작성한 뒤 지도부와 인사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최 전 원장, 이준석 대표, 박진 의원. 임현동 기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 둘째)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작성한 뒤 지도부와 인사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최 전 원장, 이준석 대표, 박진 의원. 임현동 기자

이 대표는 “동지가 된 걸 환영한다”고 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평당원으로 입당한 분에게 이런 거대한 환영식은 처음”이라고 최 전 원장을 치켜세웠다. 최 전 원장은 캠프 상황실장을 맡은 김영우 전 의원 등 극소수 인사들과 전날 밤 회동한 뒤 밤샘 고민 끝에 입당을 결심했다고 한다.

최 전 원장이 입당 승부수를 던지면서 야권 대선 지형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다. 야권 중진 인사는 “최 전 원장이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범야권의 ‘윤석열 독주’ 구도가 요동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감사원장직 사퇴 9일 만에 정치 도전을 선언하고 17일 만에 입당한 최 전 원장의 속도전은 일단 정치권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벌써부터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과 의식적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까지 다른 분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따라 저의 행보를 결정해 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최 전 원장이 의도적으로 윤 전 총장과 상반된 행보를 걷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와의 회동만 해도 윤 전 총장의 경우엔 지난 6일 비공개로 만났지만, 회동 사실은 이틀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반면에 최 전 원장 측은 15일 오전 공보 단톡방을 통해 이 대표와의 만남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입당을 결정했다.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 내부의 잠재적 우군을 조기 선점할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분출되기 전에 조기 입당해 당내 지지 여론을 꾹꾹 눌러 남겠다는 일종의 ‘압력밥솥 전략’”이라며 “정치 기반이 없는 최 전 원장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우 전 의원은 “믿을 수 있고 반듯한 대통령감, 대세는 최재형이 될 것”이라며 당내 지지세 확산을 기대했다.

최 전 원장을 반신반의하던 당 기류가 일부 달라지는 조짐도 있다. 당 최고위원들과 성일종 전략기획부총장이 입당식을 찾았고 조해진 의원, 천하람 당협위원장 및 일부 PK(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들의 캠프 합류설도 흘러나왔다.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돼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김용판 의원은 이날 최 전 원장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반면에 “정치 초보인 최 전 원장이 당내 주자들의 견제를 뚫고 불쏘시개 역할을 넘어서기에는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이날 유승민 전 의원은 “좋은 분과 함께 경선을 치르게 돼 기쁘다”는 입장을 냈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권교체에 큰 힘이 돼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권 욕심에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망치고 대선에 출마하는 게 최재형식 정치인가”(김진욱 대변인)라고 맹비판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역시 ‘최재형 때리기’에 가세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 선대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감사원 정신을 대권 장사의 밑천으로 썼다”고 주장했고, 이낙연 전 대표 캠프 배재정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초대 감사원장이란 타이틀이 아깝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국민 배신, 신의 배신, 원칙 배신, 감사원 배신”이라며 “배신자는 실패한다”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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