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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취임 한 달 만에 확연해진 이준석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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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간의 재난지원금 갈등에 국민의힘도 휩쓸려 들어갔다. 순전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때문이다. 이 대표와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그제 만찬 회동을 하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맞춰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재난지원금도 80% 선별지원이 아닌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란 내용으로 타전됐다.

여가부·통일부 폐지 이어 지원금 합의 논란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닌 만큼 신중해져야

곧 국민의힘이 시끄러워졌는데, 기존의 당론(선별지원)과 달라서였다. 오죽하면 원내 사령탑인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합의가 아니다. 당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해명했겠는가. 경제통인 윤희숙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민주적 당 운영을 약속해 놓고 당의 철학까지 맘대로 뒤집는 제왕이 되려느냐”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어제 “오해”라고 여러 차례 해명해야 했다. “소상공인 지원 확대 당론과 소비 진작성 지출을 최소화하자는 당론이 있었는데 전날 협상에서 방점을 찍은 건 첫 번째”라면서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드는 격이다. 민주당에선 “합의를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표가 해명하면 할수록 “노련한 5선의 여당 대표에게 말려들었다”는 인상을 주게 됐으니 딱한 일이다.

분명한 건 이 대표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안은 원내 사안(추가경정예산안)으로 당헌상 최고 권한은 원내대표에게 있다. 그런데도 사전에 두 사람이 조율한 흔적은 없다. 국민의힘이 당론을 바꾸는 논의를 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당론을 어기고 또 월권도 한 셈이다. 더욱이 정부·여당 간 입장이 정리된 것도 아니었는데도 끼어들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판단 잘못이기도 하다.

짐작건대 첫 여야 대표 회동이니 뭔가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욕이었고 성급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당내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불쑥 여성가족부 폐지를 얘기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통일부 폐지를 들고나왔다. 당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자 ‘작은 정부론’을 꺼내 들었다. 정부 부처 18개 가운데 가장 작은 예산(1조원대)을 쓰는 두 부처를 없애자면서 정부 효율성 운운하는 건 면구한 일이다. 당 차원의 공감대가 있지도 않았다. 당 대표로서 발언한다는데, 당을 대표해 발언하는 건 아니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에게 홍콩 인권 발언을 할 수 있으나, 회동과 외신 인터뷰(‘중국의 잔인함’)를 굳이 같은 시기에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대표는 ‘헌정 사상 최연소’란 점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응수해 왔다. 이젠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됐다. 정치판이 이 대표의 원맨쇼가 돼선 안 된다.  선당후사(先黨後私)해야 한다. 세대교체를 통해 정치교체, 나아가 정권교체까지 기대하는 이들의 마음 앞에 겸손하고, 신중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