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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 논설위원이 간다

정치 여론조사: 스냅사진일까,전쟁 벌이는 무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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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 오종택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 오종택 기자

#1.  

여권 성향의 정치컨설턴트가 근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윤석열 지지율 하락이 가파르다. 지난 열흘 동안 윤석열 일가의 비리 의혹과 자질 논란이 커지며 중도층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 조사 결과만 보면 티핑포인트가 시작된 듯싶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이 양반, 너무 빨리 무너지면 재미없는데…허허 참”이라고도 했다.
그가 인용한 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 인터내셔널·한국리서치 4개사의 정기조사인 전국지표조사(NBS)다. 특히 5~7일까지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주자 가상대결 조사였다(5% 신뢰수준에서 ±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재명 경기지사가 43%였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3%였다. 중도층에선 이 지사가 40%, 윤 전 총장이 32%였다고 한다.
그의 글엔 100여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반색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착각한 듯하다. 우리끼리 좋아할 때가 아니다”라는 글도 있었다. 실제 그렇게 볼 소지가 적지 않다. 우선 “지지율 하락이 가파르다”, “중도층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NBS에서 가상대결은 처음이었다. 비교 대상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정작 기준점이 있는 조사는 별도로 있었다. 대선 주자들 10여 명의 이름을 불러주고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문항이다. 오랫동안 해왔다. 이번엔 이 지사가 27%, 윤 전 총장이 21%가 나왔는데 전주와 동일했다. 2주 전엔 각각 27%, 20%였다. “윤석열 지지율 하락이 가파르다”고 말할 순 없는 수치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치의 한복판을 점령한 여론조사] #대선 앞두고 정기조사만 12개 #면접조사·ARS 따라 우위 달라져 #ARS는 특히 정치고관심층 대변 #"관심 갖되 맹목적 신뢰 말라" #

#2.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주 한국갤럽에 “모든 여론조사에 내 이름을 쓰지도 공표하지도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공개했다. 그는 “2017년 대선과 최근 20대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 이르기까지 한국갤럽의 조사결과는 유독 ‘홍준표 후보’에 불리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한 행동이다. 지난 1년간 지지율 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중앙값(자료를 순서대로 나열할 때 중간값)을 비교하면 한국갤럽 조사에서의 자신의 수치가 리얼미터 결과의 30%, NBS에서도 45% 수준이란 주장이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한국갤럽은 대선주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다른 조사와 달리, 응답자가 자유롭게 답변하게 한다. 사전조사를 통해 명단을 추리는 게 여의치 않게 된 지난해 1월 이후 해 온 방식이라고 한다. “조사에 내 이름을 넣지 말라”는 홍 의원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홍준표’란 응답자가 있더라도 그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한국갤럽 측은 “일단 고민해 보겠다”며 난감해했다.

#3.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여덟 달. ‘지지율이 깡패’인 시대가 낳은 만화경(萬華鏡)이다. 한국 여론조사업계의 대부인 고(故) 박무익 한국갤럽 소장이 “이번 대선만큼 언론에 여론조사 결과가 자주 보도된 적이 없었다. 또 이번만큼 여론조사가 선거 과정에서 영향을 끼친 적도 없을 것”이라고 한 게 1997년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홍수’였다면 이젠 ‘쓰나미’다. 5월 현재 12건의 정기조사 결과 발표가 이어진다. 그러니 이 지사와 윤 전 총장 간 지지율이 이런 식으로 중계되곤 한다.
지난달 24일 이재명 22.8%, 윤석열 32.3%. →7월 2일 이재명 24%, 윤석열 25%. → 4일 이재명 26.2% 윤석열 36.1%.
일희일비하기 딱 좋다. 실제 조사기관은 오마이뉴스-리얼미터, 한국갤럽, 머니투데이-PNR리서치로 다 다르다. 박 소장은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의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에 불과하며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한 스냅 사진일 뿐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하곤 했다. 같은 조사기관의 조사더라도 숫자보단 추세를 보란 의미다.
그러나 옥석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결과가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컨설턴트처럼 누군가는 “여론조사로 누가 전쟁에서 이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을 벌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여론조사는 무기다. 때로는 더없이 강력한 무기”(『하우스 오브 카드』)로 쓰고 있기도 하다.
결국 “여론조사에 관심을 가져라. 단 맹목적으로 존중하지 말아라. 질문의 방법과 응답 내용을 잘 음미하라”(해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일 수밖에 없다.

#4.  

전문가들은 조사방법 차이에 따른 경향성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게 전화면접조사냐 자동응답조사(ARS)냐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때엔 전화면접조사가 11.4%였고 ARS가 85.2%를 차지했다. 근래 정기조사 중 2건(한국갤럽·NBS)만 전화면접조사이고 나머지는 ARS다. ARS의 경우 저비용이라 시장을 넓혀가고 있지만 조사 품질 논란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단 현재 추세만 보면 전화면접조사에선 이 지사가 윤 전 총장을 다소 앞서거나 박빙인 것으로 나온다. 이 지사가 윤 전 총장과의 가상대결에서 10%포인트 차로 앞섰다는 조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ARS에선 윤 전 총장이 앞선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 머니투데이-PNR리서치의 최근 조사에선 윤 전 총장이 10%포인트 우위였다. 〈그래픽 참조〉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ARS의 경우 정치 고관심층이 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2019년 한국통계학회 연구에 따르면 전화면접조사에선 “정치에 관심이 약간 있다”는 측이 다수인 데 비해 ARS에선 “관심이 많다”는 계층이 “약간 있다”는 계층과 대등했다. 또 ARS에선 보수층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한국갤럽의 올 1월부터 4월까지의 정치 관심층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덕현 연구위원은 5월 세미나에서 “ARS가 정치 고관심층을 과도하게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를 소폭 낮추고 국민의힘 지지도를 상승시키며 무당층 비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봤다. 대선에선 정치 저관심층은 물론이고 무관심층도 투표한다.

#5.

유·무선전화 비율 때문에 논란이 되곤 했지만 근래엔 무선전화 비율이 100%인 조사도 적지 않다. 이동통신 3사가 지역·성·연령대 정보와 함께 제공하는 가상번호 조사가 이뤄진 뒤엔 불만의 목소리가 준 게 사실이다. 4·7 서울시장 보선 때 오세훈·안철수 후보 여론조사 단일화 과정에 관여했던 국민의힘 당직자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조사의 정확성에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고려사항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알뜰폰의 존재다. 올해 5월 기준 알뜰폰 가입자는 956만 명으로 이동전화 시장의 13.4%를 차지한다. 지금 무선전화 조사에선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전체 조사에 아직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특정 성향에 쏠려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2030이 오 후보에게 승리 안겼다?

‘2030이 돌아섰다’ ‘2030의 변심, 보수 오세훈에 승리 안겼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 후보가 압승한 데 대해 직후 나온 해설들이다. 출구조사 결과 2030이 20%포인트 내외 차로 오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나와서다. 특히 20대 남자들의 경우 72.5%가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중앙선관위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실제 상황은 이보단 미묘했다. 투표장에 나온 2030은 오 후보 지지로 기울었을지 모르지만, 아예 투표장을 찾지 않은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20대 투표율이 46.9%, 30대는 48.2%였는데, 지난해 총선 때와 비교하면 각각 11.8%포인트, 8.9%포인트 내려간 수치였다. 특히 20대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투표율 하락이 심했다. 60대(74.9%)에선 5.1%포인트만 떨어졌다. 이 때문에 선거인 비중에서 20·30이 각각 17%대였으나 투표인에선 14%대에 그쳤다. 반면 60대는 선거인에선 14.9%였지만 투표인에선 19.2%였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그래서 “20대가 변수일 수 있으나 캐스팅보트(승패를 결정한다는 의미)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오 후보 당선 기여도만 보자면 69.7%의 지지를 보내고 투표율도 높았던 60대가 가장 ‘수훈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어느 연령대가 선거인 대비 더 투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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