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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부실 급식' 생중계에 장병들 주식 열풍·온라인 쇼핑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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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실 급식 논란 이후 지난 5일 한 해군부대 장병이 "자랑하고 싶다"며 공개한 부대 식단. 이 외에도 냉면 등 다양한 메뉴가 등장했다. [사진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부실 급식 논란 이후 지난 5일 한 해군부대 장병이 "자랑하고 싶다"며 공개한 부대 식단. 이 외에도 냉면 등 다양한 메뉴가 등장했다. [사진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조식 : 오징어무침, 소시지 야채 볶음, 콩나물무침, 김치. 중식 : 잡곡밥, 쇠고기육개장, 바다장어 강정, 계란찜, 깻잎조림. 석식 : 된장찌개, 돼지고기고추장볶음, 무생채, 양배추 쌈.’
  13일 오전 8시쯤 육군 모사단 장병들의 부모가 모인 온라인 소통방에 당일 군 식단표가 여러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군에 간 아들이 먹는 식단이지만,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잘 먹겠습니다!”는 댓글을 남겼다. 소통방 방장을 맡은 부모와 부대 측이 소통해 식단 외에 훈련 정보 등도 공유한다.
 올해 군부대 내 부실 급식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국방부와 각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과거 부대 내부 실상은 좀처럼 외부로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장병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군내 각종 부조리 고발 창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등에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육대전에는 ‘닭고기 없는 닭볶음탕’‘돼지고기 없는 돈육김치찌개’가 배식됐다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지난 5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만난 휴가 장병 김모(22)씨는 “부실 급식 문제가 터진 뒤 부대에서 병사들과 회의를 자주 하고 대대장 등도 수시로 강조하는 등 특별히 식단에 신경을 쓰더라”고 전했다. 지난 5일 육대전에는 해군 모부대 장병이 "부대 급식을 자랑하고 싶다"며 풍성한 고기와 냉면, 햄버거, 수제비 등 다양한 음식이 담긴 배식판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장병 휴대전화 사용이 실제로 눈에 띄는 변화를 낳은 것이다.

지난달 부대 저녁식사에 '닭고기 없는 닭볶음탕'이 나왔다고 한 장병이 제보한 배식판 [사진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부대 저녁식사에 '닭고기 없는 닭볶음탕'이 나왔다고 한 장병이 제보한 배식판 [사진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파급 효과는 병영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9일 ‘민·관·군 합동위원회 산하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위원회’를 열고 창군 이래 70여년 간 ‘유사시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던 군용 모포를 일반 가정에서 쓰는 솜이불 등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유사시 군장을 꾸릴 경우에도 모포 대신 쓸 수 있는 4계절용 침낭을 개발하겠다고도 밝혔다. 군 조리병 증원과 최신 오븐 도입은 물론이고 1인당 생활관 공간 확대 등도 계획에 담겼다.
 휴대전화 허용은 과거 군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다른 양상도 낳고 있다. 강원도 전방 부대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하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정모(24) 상병은 “일과가 끝나는 오후 5시 30분쯤부터 오후 9시정도까지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데, 과거에는 유튜브 등을 보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주식 열풍”이라고 소개했다. 장병 월급이 병장 기준으로 60만원 정도로 늘면서 주식 투자를 하는 병사가 대폭 늘었다고 한다. 정 상병은 “얼마 전까지는 코인 붐도 일었다”며 “코인이 폭락하자 생활관에서 휴대폰으로 확인하다 비명을 지르는 동료가 있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몇 시간 가량의 휴대폰 사용만으로는 투자 관리가 어렵다. 정 상병은 “요즘 부대마다 PC방이 있는데, 일과 시간에도 짬을 내 컴퓨터로 코인이나 주식 시세를 확인하는 장병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사회와 단절됐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전방부대에서도 휴대폰으로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다. 장병 월급 등이 신용·체크카드처럼 쓸 수 있는 '나라사랑카드'로 지급되기 때문에 군 PX는 물론이고 일반 쇼핑몰 사이트에서도 휴대전화로 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보내는 택배뿐 아니라 각종 쇼핑몰에서 구입한 물품이 택배로 배달되면 장병들이 위병소에서 찾아간다.

 이런 쇼핑에 군 월급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부모 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학에 다니다 군 입대한 아들을 둔 이 모(52·서울 송파구) 씨는 “운동용품 등 군에서 사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카드를 줬는데 월 결제액이 60만원 이상 나와 놀랐다”며 “구매 내역을 보니 전기라면기 등 다양하던데, 애가 군대에 간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요즘은 부대 구성원끼리 외부 음식을 시켜먹는 일도 흔하다.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는 한 장병은 “배달비가 많이 나와서 그렇지, 주말 등에 당직 계통으로 보고한 뒤 치킨은 기본이고 족발 등 웬만한 음식은 모두 시켜먹을 수 있다”며 “한 명이 결제하면 n분의 1로 송금을 해준다”고 소개했다.
 병영 생활이 중장년층이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변한 가운데 일부 부모의 과도한 관심이 빈축을 사기도 한다. 지난 5월 아들을 경기도 신병교육대에 보낸 김 모(49) 씨는 온라인 앱에 가입했다. 앱에 개설된 부모와의 소통방에서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훈령병들의 사진이나 훈련 일정, 건강 상태 정보 등을 제공했다. 김 씨는 “최근에는 백신 접종 상황도 알려주더라”며 “낯선 군대에 보내놓고 불안하던 차에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부 부모가 성인이 된 아들을 마치 초등학생처럼 챙기면서 과도한 요청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덧붙였다.
 휴대전화를 쓸 수 없는 훈련소에서도 ‘효도 전화’ 시간이 있어 가족과 통화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군화가 작다는데 바꿔줄 수 없느냐’‘피부가 약해 햇볕을 오래 쬐면 안되는데 걱정이다’는 등의 질문이 올라오고, 부대 관계자들이 일일이 답변을 달더라는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받아 떠나는 버스를 기다렸다 창밖에서라도 보려고 한다면서 몇 번째 줄에 앉는지를 묻는 부모도 있었다고 김 씨는 전했다. 김 씨는 “부모의 품에서 떠나 군대에 가는 경험은 딱 한 번인데, 그런 환경에 놓여보는 것 자체가 추후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어떨 때는 군이 안보 태세를 갖추는 곳이 아니라 '보모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우리 군의 목표도 달라져 있다. 군 복무가 단순히 사회와 단절된 기간이 되지 않도록 복무 환경을 생산적으로 만들어 복무 동기를 유발함으로써 전투력도 높이고 전역 후 국가 경쟁력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하겠다는 지향점을 세워놓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으로 대표되는 군 환경은 빠르게 변화 중이다.

휴대전화 허용 그 후, 병영 생활 어떻게 달라졌나 #사회 단절은 옛말, 부대·부모 소통방 #'70년 필수품' 모포 대신 솜이불 추진 # 부대서 엄마 카드로 쇼핑, 택배 받아

휴대전화를 교육에 활용한 5군단…AI 전문가가 온라인 강의

5군단 3사단 백호대대 장병들이 생활관에서 최재규 매직에코 대표로부터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포천=김성탁 논설위원

5군단 3사단 백호대대 장병들이 생활관에서 최재규 매직에코 대표로부터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포천=김성탁 논설위원

 “병원에서 첨단 영상을 찍어 암을 발견하는데, 많은 자료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눈으로 보고 지나치려 할 때 AI가 ‘다시 체크하라’는 신호를 줄 수 있는 거죠.”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5군단 3사단 백호대대 생활관. AI 전문가인 최재규 매직에코 대표가 장병 30여 명에게 디지털 기술의 흐름과 AI 개발 현황을 설명했다. 장병들 사이에선 “데이터 통합 분석 외에 AI가 쓰이는 다른 영역을 알려달라”, “예술 분야도 AI 대체 가능성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나왔다.

 휴대전화 허용을 교육 계기로 활용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이 부대 장병들은 지난 5월부터 온라인으로 ‘AI 리터러시’ 강의를 듣고 있다. 5군단과 공공협력원(원장 이창민)이 자기 계발과 전투력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자는 육군의 ‘청년DREAM 국군드림’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려 이 과정을 만들었다. 희망 장병들이 한가한 시간에 IT 전문가들의 화상 강의를 휴대전화로 듣다가, 이번 달부터 매주 교육 시간을 정해 5군단 전 장병이 온라인 강의를 접하고 있다.

5군단 장병들은 내무실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공공협력원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온라인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다. 포천=김성탁 논설위원

5군단 장병들은 내무실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공공협력원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온라인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다. 포천=김성탁 논설위원

 그동안 국내 IT업계 전문가가 블록체인 기술과 IT기업 입사에 필수적인 코딩의 중요성을 알려줬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가 실리콘밸리 기업 취업 노하우를 소개했다. 강의는 유튜브를 통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박성주 상병은 “학교에선 이론 수업이 많았는데 군에서 서비스 기획이나 AI 트렌드를 알게 됐다”며 “동료들도 AI를 어렵게 여기다가 온라인 강의를 들은 후엔 질문을 해오더라”고 말했다.

 5군단과 공공협력원은 향후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열고, 전문가들로부터 온라인 멘토링을 받을 기회도 줄 예정이다. 김현종 5군단장은 장병들에게 “무인항공기를 띄운 뒤 지금은 군인이 보지만, AI를 접목하면 정확한 판단에 도움이 된다”며 “제대 후 꿈을 펼칠 때 디지털 소양을 모르면 주도할 수 없으니 일과 후 시간을 잘 활용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