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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인SF]승리호·서복…한국도 본격 SF영화 시대 열리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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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우주 SF '고요의 바다'. 조만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우주 SF '고요의 바다'. 조만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의 촉: [SF인SF]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SF영화의 시대가 열리는 걸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영화 산업이 고사 직전의 신음을 내고 있지만,  지난 2월 한국 최초의 우주SF ‘승리호’(감독 조성희)를 시작으로, 4월에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서복’(감독 이용주)이 개봉했다.  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또 다른 우주SF ‘고요의 바다’도 조만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며,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도 기다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만 방영된 승리호는 개봉 직후 6일간 월드와이드 1위라는 믿기 힘든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극장과 OTT 티빙에서 동시 공개된 서복은 극장 관객 수는 38만 명으로 저조했지만, 해외 56개국에 선판매되는 성적을 올렸다.

웬일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SF영화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제작 기술도 부족했지만 시나리오부터 허술했다. 장르 상 SF라고 하는데 왜 ‘과학’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한국에 SF영화가 뭐가 있었지?’‘SF는 한국에서 안 돼’ 등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신동일 영화감독은“SF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척박했고 제작이나 투자 쪽에서 SF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며 “SF적 상상력과 재능을 가진 감독들도 태부족인 등 총체적으로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2092년 우주 위성궤도가 무대인 영화 '승리호'에서 우주선 선장 역의 김태리.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인물로, 조종사 태호(송중기), 전직 갱두목 타이거 박(진선규),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 등과 모험에 나섰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2092년 우주 위성궤도가 무대인 영화 '승리호'에서 우주선 선장 역의 김태리.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인물로, 조종사 태호(송중기), 전직 갱두목 타이거 박(진선규),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 등과 모험에 나섰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영화는 시대와 사회 비추는 거울

영화는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SF의 ‘과학기술’이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 속 미래기술이다. ‘마션’(2015)과 인터스텔라’(2014)는 실제 화성 탐사를 준비 중이고, 블랙홀을 연구하는 미국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작가ㆍ감독들도 얼마든지 우주과학을 상상하고 그려낼 수 있겠지만, 이 땅의 기술이 아닌 다음엔 작가도 관객도 한국 SF를 받아들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내츄럴시티’(2003) 등 적지 않은 토종 SF영화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부구조는 토대에 의해 규정된다는 말은 SF영화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2021년은 세계는 물론, 한국으로서도 큰 획을 긋는 ‘우주의 해’다. 오는 10월이면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한 한국의 첫 우주로켓 누리호(KSLV-2)가 우주로 올라간다. 중량 200t, 전장(높이) 47.5m의 누리호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3단형 발사체다.  10월 첫 발사가 성공하게 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 만 24세에 불과한 대학 4학년 학부생(KAIST 항공우주공학과 신동윤씨)이 스타트업(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을 이끌며, 소형우주발사체를 만들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6월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한공우주연구원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인증모델을 트렌스포터(이송장치)에 싣고 발사대로 옮기고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난 6월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한공우주연구원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인증모델을 트렌스포터(이송장치)에 싣고 발사대로 옮기고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친구에게 우주 쓰레기 얘기 들었다"

세계적으로도 2021년, 특히 이달 7월은 국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의 첫 우주여행이 열리는 상징적인 해이며 달이다. 11일에는 영국 버진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이 처음으로 자신의 우주기업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 유니티를 타고 고도 100㎞에 가까운 준궤도 우주여행을 떠나게 된다. 9일 후인 20일에는 미국 아마존의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가 처음으로 블루오리진의 로켓 뉴셰퍼드를 타고 역시 준궤도 우주여행에 나선다. 두 회사 창업주의 첫 우주여행은 일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우주여행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영화 ‘승리호’의 시대적 배경은 앞으로도 70여 년 뒤인 2092년. 지구는 병들고, 우주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Utopia above the sky)가 만들어진다. 우주궤도엔 버려진 각종 위성과 발사체 부품 쓰레기로 가득하다. 주인공 태호(송중기 분)와, 장선장(김태리 분) 등은 우주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우주 청소선’의 선원들이다. 조성희 감독은 2009년 친구가 들려준 초속 7~8㎞ 속도로 날아다니는 우주폐기물의 존재를 알게 돼 승리호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고 한다.

유럽우주청(ESA)이 그린 우주쓰레기의 상상도. 고도 2000 km 이하 지구 저궤도에 떠 있는 실제 우주쓰레기 데이터베이스를 정보로 그렸다. [AFP=연합뉴스]  T

유럽우주청(ESA)이 그린 우주쓰레기의 상상도. 고도 2000 km 이하 지구 저궤도에 떠 있는 실제 우주쓰레기 데이터베이스를 정보로 그렸다. [AFP=연합뉴스] T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과학기술 시대"

우주 쓰레기는 이미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는 지름 1㎝ 이상 기준으로 보면 최대 100만 개에 달하며, 0.2㎝ 이상 크기의 우주 쓰레기는 2억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우주 쓰레기’가 총알의 7배에 달하는 초속 7~8㎞의 속도로 날아다니며 인공위성 등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2009년 러시아 시베리아 상공에서 미국 민간통신위성 ‘이리듐 33호’와 러시아 군사통신위성 ‘코스모스 2251호’가 충돌해 파편 1500여 개가 발생했다. 중국 톈궁 등 수명을 다한 우주기지나 위성이 지구로 추락한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는 이런 우주 쓰레기를 감시하고 경고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SF어워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지용 건국대 교수는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과학이란 소재가 이과생이나 마니아의 영역이라 여겨졌는데, 최근 들어 우주로켓이 발사되고,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접하면서 이제는 과학기술이 나의 생활과 동떨어진 게 아니고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실감하고 있어 과학 관련 소재가 흥미를 일으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SF를 소재로 한 웹툰ㆍ웹소설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진 것, 세계 어디를 내놔도 뒤지지 않는 컴퓨터그래픽 등 영화제작 기술이 발전한 것도 한국의 SF영화 시대를 여는 바탕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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