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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일 들춘 경찰···이재명 분노의 페북엔 '응징' 담겼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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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어렵고 어려운 정치개입 감별

이재명 지사가 발끈했습니다. 언성을 높이진 않았고 페이스북 글에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1주일 전인 지난 3일의 일입니다.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가 최근 그에게 출석을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유였습니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5년 두산그룹과 네이버 등 기업들에 인허가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프로축구단 성남FC에 후원금이나 광고비 160억여원을 지급하게 했다는 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입니다. 성남FC는 성남시 소유의 독립법인이어서 성남시장이 명목상 구단주입니다. 고발은 지방 선거가 진행되던 2018년 정치권에서 제기했습니다.

이 지사가 다소 억울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6년 전의 일, 3년 전의 고발 사건에 느닷없이 출석 요구라뇨. 그것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이 진행되는 ‘타이밍’에 말이죠.

2014년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이 승부차기 끝에 4-2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범 감독(가운데)이 성남FC 신문선 사장과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4년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이 승부차기 끝에 4-2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범 감독(가운데)이 성남FC 신문선 사장과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지사는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KBS 보도가 나온 지 6시간쯤 뒤인 3일 새벽 2시가 지난 시간에 페이스북에 〈아직도 정치개입하는 경찰〉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기업유치를 위한 성남시의 노력이나, 광고수입을 늘려 성남시 예산부담을 줄이려 애쓴 구단의 노력에 칭찬은 못 할망정, 수년에 걸친 반복적인 소환조사, 압수수색, 계좌추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업무방해입니다.”

2800자 정도의 짧지 않은 글에서는 분노와 울분이 느껴집니다. “경찰이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언론에 흘려 의혹 부풀리기에 나선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는 선거개입 범죄이자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 범죄입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이 지사는 혐의가 없으니 서면조사로 해명하면 충분하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7일 경기도 파주시 연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 면접 정책언팩쇼'에서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7일 경기도 파주시 연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 면접 정책언팩쇼'에서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 지사는 이 글을 몇 차례 고치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있는 기능(수정내역보기)을 시행하면 고쳐 쓴 글과 작성 시간까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3일 오전 2시 29분, 오전 3시 1분, 오전 10시 51분, 오후 6시 15분에 글을 작성·수정한 걸로 나옵니다.

글의 제목은 〈아직도 정치개입하는 경찰〉에서 〈여전히 정치개입하는 경찰〉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는 〈여전히 정치개입하는 경찰,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습니다〉로 수정됐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는데 글의 말미가 눈에 띕니다.

“시대착오적인 일부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직권남용, 정치개입행위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대응하겠습니다.”에서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습니다.”로 달라졌습니다. 제목과 본문에서 달라진 뉘앙스는 ‘응징’입니다. 향후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견제구를 날린 것 같기도 합니다. “나 대통령 되면 가만두지 않을테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로 읽는다면 무리한 추론일까요.

이후 분당경찰서의 분위기는 복잡미묘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결론은 아직 모르지만, 이 지사 조사만 하면 무혐의 종결될 것 같았는데 좀 꼬인 것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언론 보도가 나오고 이 지사가 ‘폭발’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 지사 쪽에서는 “분당서가 엮으려고 한다”고 하고, 지역 사회의 반이재명파 쪽에서는 “경찰이 묻으려고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대선 정국에 정치인 사건은 검찰·경찰 모두에게 다루기 어렵고 불편한 수사입니다. 이 지사의 추측대로 정치적 음모가 도사릴 여지도 많습니다. 수사기관보다 정보가 훨씬 부족한 언론은 보도 가치 판단에 애를 먹습니다. 어떤 세력에 의해 이용당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예비후보들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TV조선, 채널A 공동 주관 TV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이재명, 양승조,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최문순 후보.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예비후보들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TV조선, 채널A 공동 주관 TV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이재명, 양승조,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최문순 후보. 임현동 기자

사건을 보는 국민 의견도 엇갈릴 겁니다. ‘무혐의’로 보이는데 굳이 소환조사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유력 정치인의 의혹을 서면조사로 마무리하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인지, 뒤늦게 언론 보도가 나와 시끄러워지는 건 정상적인 것인지 등등…. 당선 유력 정치인이라면 고민과 의심은 더 첨예하겠죠.

반대의 관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경찰관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건 또 괜찮은 건지 아리송합니다. 정치에 개입하는 경찰에 다시 정치인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지사뿐만 아니라 다른 잠룡들을 둘러싼 수사들도 대부분 이런 풍파를 일으킬 겁니다. 아무쪼록 후보들과 수사기관 모두 유권자들이 짜증 나지 않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응과 판단을 해주시길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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