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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인치 길어진 이학주의 배트, 44일의 깨달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1군에 복귀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학주. 0.5인치 배트를 사용하면서 잡는 방법에도 변화를 줬다. 삼성 제공

최근 1군에 복귀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학주. 0.5인치 배트를 사용하면서 잡는 방법에도 변화를 줬다. 삼성 제공

간절함이 가능성을 만들었다. 삼성 유격수 이학주(31) 얘기다.

이학주는 5월 초 배트를 바꿨다. 줄곧 사용한 33.5인치(85.09㎝)가 아닌 34인치(86.36㎝) 배트를 새롭게 주문했다. 하지만 효과를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5월 1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극심한 타격 부진(33경기, 타율 0.220)이 이유였다. 1군 백업 내야수 김지찬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이학주는 2군에서 절치부심했다. 44일 동안 0.5인치(1.27㎝) 길어진 배트에 적응했다. 배트를 쥐는 방법도 바꿨다. 노브(배트 끝에 달린 둥근 손잡이) 위를 걸쳐서 잡던 기존 방법을 버리고 반 뼘 정도 배트를 짧게 잡았다. 배트를 짧게 잡으면 원심력이 줄어들어 그만큼 장타 생산에 불리하다. 대신 콘택트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학주는 "2군에 내려가기 일주일 전쯤 배트를 바꿨다. 배트를 짧게 잡으니까 콘택트 능력도 좋아지고 볼을 보는 것도 편해졌다"며 "타격 타이밍도 맞더라.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다. (2군에) 내려가서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효과는 만점. 2군 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45(55타수 19안타)를 기록했다. 지난 2일 1군에 재등록된 뒤 첫 2경기에선 7타수 4안타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타석에서의 생산성이 달라졌다.

그는 "배트 중심에 맞아야 타구가 뻗어 나간다. (2군에 있을 때) 집에서 1군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야 쉽게 물러나지 않는 타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간결한 스윙을 위해 (배트를) 짧게 잡는 거"라고 했다. 이학주의 반전을 반기는 건 허삼영 삼성 감독이다. 허 감독은 "이학주에게 바라는 건 홈런이 아니다. 정확한 수비와 정확한 타격"이라며 "이학주는 30~40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가야 할 길이 그런 방향(정확도)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2군에 내려가 있던 시간은 독이 아닌 득이었다. 야구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적립할 기회였다. 이학주는 "2군 선수들과 어울리고 어린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했다. 열정 있는 선수들과 훈련하고 땀 흘리니까 40일 넘는 시간이 지나갔더라. 길 수 있고 짧을 수 있는데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2군에 내려간 지 2주 정도 지나니까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아졌다. '어 뭐지?'이런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오치아이 2군 감독님께 감사하다. 좋은 말씀 해주셨고 그게 좋은 에너지가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삼성 타선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외국인 타자 호세 피렐라, 베테랑 거포 오재일, 공격형 포수 강민호 등 상·하위 타선의 짜임새가 수준급이다. 이학주까지 궤도에 오른다면 상대 투수가 받는 위압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학주는 "시즌 초반 나 때문에 패한 경기가 있었다. 이젠 나 때문에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40일 넘게 2군을 다녀온 이학주. 간절함 속에 0.5인치 길어진 배트만큼 그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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