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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식재산 전담할 ‘통합 컨트롤타워’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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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명신 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김명신 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코로나19와 미·중 패권 갈등의 이면에 공통으로 엮여 있는 문제가 지식재산(IP) 이슈다. 지식재산 이슈는 코로나 백신 특허 면제 논란, 미·중 기술 패권 전쟁과 전략자산 확보, 인공지능(AI)과 가상화폐 등에도 연관돼 있다.

나눠진 정부 조직·기능으론 한계 #영국·캐나다 시너지 경험 배워야

코로나 백신 특허 면제 문제는 전 국민의 보건과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글로벌가치사슬(GVC)의 재편을 초래하면서 주요국들은 첨단기술을 전략 자산화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무려 11개 정부 부처가 상호 조정 없이 법률안과 법 개정안을 각자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지식재산 문제는 특허청이나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국의 제한된 업무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전 국민의 건강과 국가 안보에 직결되고 있다. 국가 경쟁력과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적 의무 이행과 연결되면서 국정 의제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급변하는 지식재산 생태계와 미래 신질서 형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기존의 분절된 지식재산 기능을 각각 수행하는 정부 조직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강력한 지식재산 추진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이낙연·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차기 정부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할 경우 ‘지식재산처’를 설립하겠다는 정책을 나란히 제안해 고무적이다. 두 전직 총리는 지식재산 기본법에 따라 신설된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산업재산권·저작권·신지식재산이 하나의 컨트롤타워 밑에서 일관된 기획과 정책으로 관리·조정·집행돼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실용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산업디자인 제품은 디자인 보호법상 디자인이면서 동시에 저작권법상 응용미술 저작물이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기능적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지만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발명은 특허법상 보호 대상이기도 하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배치 설계는 그 자체가 반도체 배치 설계권의 대상이지만, 관련 발명은 특허법상 보호 대상도 된다.

뿐만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신지식재산도 속속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 산출물, 데이터베이스와 데이터 세트, 식물 신품종과 유전자원, 트레이드 드레스와 도메인 네임, 퍼블리시티권, 영업 비밀, 기술 비결, 블록체인 기술과 융합 환경 관련 비즈니스 모델도 속속 등장한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통합적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지식재산 강국이 되려면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종합적인 지식재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도 장관급 지식재산처 설립이 필요하다.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는 산업 재산권에 관한 파리협약과 저작권에 관한 베른협약을 통합해 운영한 지 오래됐다. 영국·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을 하나의 기관에서 관장하면서 시너지를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식재산자원과 조직의 우선화법’이 2008년 시행되면서 지식재산집행조정관(IPEC)이 백악관의 수석비서관과 같이 지식재산 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지식재산 집행을 총괄한다. 한국도 청와대에 지식재산비서관을 두길 권한다. 국정 의제로 격상한 지식재산 정책에 관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의결 사항을 반드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근거 조문을 지식재산 기본법에 추가해야 한다.

지식재산 기본법의 제정 운동을 주도한 필자 의견으로는 기본법에 따라 신설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593개 정부위원회 중 하나 정도로만 취급해서는 지식재산 강국은 요원할 것이다. 한국이 세계 지식재산 허브 국가로 도약하려면 지식재산처를 설립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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