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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학의 위기, 시장과 정부 역할 조화로 해법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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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류장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

류장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

인구 감소의 먹구름이 대학 사회를 뒤덮고 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입학 연령 인구가 입학 정원에 미달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대학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입학 연령 인구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급감기를 거쳐 그 이후에도 이 현상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감소, 역대급 대학 위기 초래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2000년에 64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가 2010년에는 47만 명으로 줄었고, 2020년에는 27만 2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대학 입학 자원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충원 현상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대와 전문대에 집중되면서 지금 지방대와 전문대의 위기감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부터 시작이고 앞으로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학들은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물적 자본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인적 자본이 기여한 역할, 특히 대학이 기여한 역할을 고려하면 이 위기는 한국사회의 중장기적 잠재력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적확한 문제 진단과 대책 마련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대학 발전의 기회,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원칙 또는 기본 방향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 대학만의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찾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셋째,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정부 역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 역할의 적절한 조화를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기본 원칙 또는 기본 방향을 전제로 하면서 구체적 방안들을 마련해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은 그동안 우리의 국가 경쟁력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런 점에서 입학 자원이 줄어든다고 해서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여야 하는 것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학에 대한 공적 지원 예산 비중이 작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를 맞아 오히려 대학 재정을 확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역의 일자리 감소와 경제 위축을 통해 전체 국가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종국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대학 발전의 방안을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른바 한계대학들은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외면받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그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속도감 있게 조치해야 한다. 대학을 둘러싼 시장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정부는 과감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즉 ‘시장과 정부 개입의 조화’ 또는 ‘대학 자율성과 책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교육부는 얼마 전에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교육 또는 재정 여건이 부실한 한계대학을 확실하게 관리하고, 혁신 역량을 갖춘 대학에 대해선 지역 수요와 대학 여건 및 역량 등을 고려해 발전 전략을 수립·추진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의 균형 발전 지원 대책도 제시했다. 지금의 위기를 대학 발전 및 국가 발전의 기회로 전환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계획대로 진행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학과 교육부는 물론이고, 예산 부처와 국회 등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대학 위기가 대학과 국가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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