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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이동 촉매제 … 정치·경제지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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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라싸시 중심부 베이징중루(北京中路)에 위치한 부다라궁(布達拉宮) 앞. 수백 명의 관광객이 궁 왼쪽 담벽에 몰려 앉아 종 경전(종 위에 경전을 새긴 것. 이 종을 돌리면 경전을 모두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함)만 하릴없이 돌려대고 있다. 허베이(河北)지역에서 왔다는 마오(毛) 할아버지는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벌써 입장권이 다 팔렸다"며 허탈해 했다.

티베트 정치.종교의 핵심인 부다라궁은 승려들의 수도생활을 고려해 하루 2000명으로 관람객을 제한하고 있다. 그것도 오전까지만이다. 칭짱 철도 개통 전에는 오전에만 가면 누구나 부다라궁을 참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만의 말씀이다. 오전 9시30분만 되면 입장권 2000장이 동난다. 자연히 암표가 극성이다. 여행사 직원인 류단단(劉丹丹.27.여)은 "100위안(약 1만2000원) 하는 입장권이 심할 경우 800위안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티베트 라싸여행사의 장리훙(張力宏)은 "지난해 성수기인 7월 하루 1000명에도 못 미치던 관광객이 요즘에는 많을 경우 하루 4000여 명씩 몰려든다"며 "호텔과 식당은 지금 빈자리가 없다"고 즐거워했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잘 데, 먹을 곳이 턱없이 모자란다. 라싸 내 최고급 호텔인 라싸호텔은 26일부터 방이 꽉 찼다. 이 때문에 예약만 믿고 늦게 호텔을 찾은 사람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밤 10시 이전까지 방값을 지급하지 않으면 예약이 취소된다'는 호텔 규정 때문이다. 다른 호텔 객실부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창줴줘마(倉決卓瑪)는 "이달 들어 매일같이 야근"이라고 말했다.

가장 재미를 보는 곳은 택시와 상점들. 3년째 택시를 운전한다는 다와쒀랑(達娃索廊.23)은 "옛날엔 하루종일 일해야 500위안쯤 벌었다. 그러나 요즘엔 오전 3시간만 일해도 700위안은 거뜬하게 번다"며 "칭짱 철도 개통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라싸 내 제2의 사찰인 다샤오쓰(大昭寺) 앞에서 천주(天珠).녹송석(綠松石) 등 현지산 천연 보석을 팔고 있는 티베트소옥(西藏小屋)의 리원둥(李文東)사장은 "칭짱 철도 개통 이후 비싼 보석의 경우 10%, 일반 장식품은 15%가량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칭짱 철도는 중국의 정치.경제 지도도 바꿔놨다. 우선은 경제다. 티베트에 무궁무진하게 매장돼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 희귀 광물 등 자원들을 과거의 30%의 운임으로 내륙에 들여올 수 있다. 내륙의 기술과 원자재를 싼값에 공급해 4년 안에 티베트 경제를 현재의 2배 규모로 키울 수 있는 밑바탕도 마련했다. 티베트 남쪽의 인도.네팔.부탄.브루나이.미얀마 등 서남아시아들과 적극적인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정치적 결속도 한층 공고해졌다. 티베트는 여전히 독립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중국으로선 한시라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지역이다. 칭짱 철도 개통은 한족의 티베트 이주를 부추기는 효과적인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들고나는 것이 한층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 통제도 한결 쉬워졌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이 강력해진 것은 물론이다.

라싸=진세근 특파원

4000km 달려온 열차
베이징을 출발한 지 만 이틀이 가까운 시간. 칭짱고원의 산과 계곡에 놓인 수많은 터널과 교량을 통과해 총 4000㎞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 열차가 협곡에 건설된 고가 철로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라싸를 향해 속도를 올리고 있다. 베이징 서역과 라싸 간 칭짱 철로의 총거리는 4064km다.

건강증명서
칭짱 열차를 타려면 건강증명서를 내야 한다. 고산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는지 확인한다.

베이징역 출발
베이징 서역의 플랫폼에서 라싸행 칭짱 열차는 매일 딱 한번 오후 9시30분에 떠난다.

차창 밖 초원의 야크
양과 소를 교배한 듯한 야크는 티베트에서 가장 흔한 가축이다. 티베트인에게 젖과 고기를 제공한다.

철로변 토사 유출 막는 격자형 돌담
철로 옆 평원 너머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바람이 거세고 소나기가 잦아 토양의 유실을 막으려고 바둑판 무늬 형태로 돌을 쌓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마침내 부다라궁에 …
칭짱 철도의 최종 기착지인 라싸(拉薩)의 부다라궁(布達拉宮). 라싸 중심부 훙산(해발 3600m)에 위치한 부다라궁은 7세기에 건설됐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궁궐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다. 훙궁(紅宮)과 바이궁(白宮)으로 구성됐다. 훙궁엔 영탑전과 각종 불당이 있고, 바이궁은 달라이 라마가 기거하며 정무를 펼치던 곳이다.

고원에서 풀 뜯는 양떼
열차 창밖으로는 산기슭마다 양떼가 풀을 뜯는 모습이 들어왔다. 철로에 가까이 있던 녀석들은 기차가 다가가자 후다닥 산으로 달아났다.

기압 차로 부푼 라면 봉지
기차가 해발 4000m 이상 올라가자 기압 차 때문에 라면 봉지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고산증 걸린 승객
거얼무 역을 지나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두통을 호소하던 한 승객은 산소 호스를 코에 끼운 채 길게 누웠다.

이렇게 험한 길 뚫고 왔구나
라싸역엔 칭짱 열차가 달려온 험준한 산세를 보여주는 부조형 지도가 있다. 얼마나 힘겨운 여행을 했는지 돌아보며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라싸역의 라마승
라싸역에 도착하자마자 라마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자 디지털 카메라를 흔들어대며 그러지 말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 칭짱 철도 타는 법=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베이징.청두(成都).충칭(重慶) 등 칭짱 철도가 연결되는 도시의 여행사에서 모집하는 여행단에 가입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여행사는 이 업무를 취급할 수 없다. 이 경우 여행사가 '티베트 입경허가서'까지 받아주기 때문에 수월하다. 티베트에서 입경허가서가 없으면 호텔에 머물 수 없다. 또 자칫하면 공안에게 연행돼 조사받은 뒤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열차를 타기 전 신체검사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도 필수다. 문제는 지금 표를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 여행사가 철도여행객 모집을 중단했다는 점. 따라서 직접 베이징에 와서 표를 사는 수밖에 없다. 베이징에선 서역(西站)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청두.충칭 등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재 사나흘 뒤의 표를 살 수 있다. 침대표는 열흘 뒤의 표나 살 수 있지만 이마저도 그날그날 역에 나가 기다려야 한다. 직접 표를 구입할 경우 입경허가서를 받기 위해선 베이징 내 티베트주정부사무소(전화 010-64980373)에 신청해야 한다. 허가를 받는 데 적어도 1주일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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