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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모범국이 방역 포기했다…델타 비상 시국, 이 나라 실험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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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복지팀장의 픽: 싱가포르의 방역 포기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 손님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 손님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전 세계가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 여파로 속속 방역 빗장을 다시 걸어 잠그는 가운데 싱가포르의 거꾸로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최근 록다운(봉쇄) 과 대규모 역학조사 등의 기존 방역 조치를 폐기하고, 검역 없는 여행과 대규모 사적 모임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1년 반 넘게 매달려온 신규 확진자 집계 중단도 포함됐다. 사실상 방역 포기 선언인 셈이다.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코로나19 TF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로드맵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추구해온 ‘코로나 제로(0)’ 정책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간 한국 못지않게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펴온 싱가포르가 급진적인 실험을 시작하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잇따른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 때문이다. 그간 이어온 방역 모델로는 앞으로 계속 발생할 변이에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코로나19를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니 안전하게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리센룽 총리가 지난 5월 대국민 연설에서 언급했던 ‘뉴노멀(새로운 일상)’로의 전환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당시 리총리는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고 독감이나 뎅기열처럼 엔데믹(계절성 유행) 감염병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백신 접종을 토대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싱가포르 풍경 AFP=연합뉴스

싱가포르 풍경 AFP=연합뉴스

TF는 현지 일간지인 스트레이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쁜 소식은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좋은 소식은 코로나19와 함께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TF는 “코로나19를 인플루엔자(독감)이나 수족구병, 수두처럼 바꿔나갈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방역 포기 실험, 우리도 가능할까

싱가포르 방역 포기 실험의 배경에는 높은 접종률이 있다.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싱가포르의 1차 접종률은 57.4%, 접종 완료율은 36.7%에 달한다.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소아·청소년 인구를 빼면 맞을 사람은 다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백신 접종 효과는 대단했다. 싱가포르의 코로나 19 사망자는 지난달 21일 이후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CNN은 “싱가포르 인구 3분의 2가 이달 초까지 1회 접종을, 내달 9일까지는 2차까지 접종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앞으로 매일 신규 확진자를 헤아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위중한 환자 치료와 사망자 감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경증 환자는 자가 치료를 권장하면서 의료 체계 부담을 덜기로 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백신 접종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변이에 대비한 차세대 백신을 준비할 계획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나 손 씻기 같은 개인 방역 수칙은 계속 유지된다.

국내 방역 전문가들은 싱가포르의 실험을 참고할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싱가포르의 실험을 우리도 참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 치명률이 독감(0.1% 이하)에 가깝게 바뀌고 있는 만큼 방역 전략 변화를 고민할 때가 됐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코로나19와의 공존, 일상과 방역의 균형이라고 말만 할 뿐 지난 1년 반 동안 해온 방역 조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라며 “방역의 목표를 확진자 수 줄이는 데서 벗어나 중증환자와 치명률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 접종률이 더 올라가면 실내 마스크 착용 같은 핵심 방역수칙은 유지하되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 해제와 사적 모임 금지 제한 등은 풀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23일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를 밀며 걷고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를 밀며 걷고있다. AFP=연합뉴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싱가포르 정도의 접종률이 되면 해볼 만한 실험이라고 본다”라며 “싱가포르가 어떻게 되는지 잘 지켜보고 참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증 환자를 줄이고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전략에 대해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처럼 1차 접종률 60%, 완료율 35%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2일 기준 우리나라의 1차 접종률은 29.9%, 완료율은 10%다. 그는 “지금 수도권에 현행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데, 이때 백신 접종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우리나라 방역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 초기에 만든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고위험군의 감염을 확인하면 바로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감염이 덜한 곳과 빈번한 곳을 분석해 방역 조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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