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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연애 독감' 그 바이러스의 정체는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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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로맨스 약국'의 지은이는 이러한 전제 아래 연애에 사용되는 '언어'를 눈여겨보자고 제안한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말들 속에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본질이 들어 있다. 알게 되면, 극복하기가 쉽다"며. 언어학 전공자(현재 일리노이대 언어학 박사과정 중)이자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추리소설 전문 번역자)답다.

책에는 연애 과정에 따라붙는 온갖 말과 그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예컨대 남자들이 흔히 하는 "첫사랑과 닮으셨어요"라는 말에서 지은이는 맘에 드는 여성에 '작업'을 걸려는 의도는 물론, 상대를 자신의 이상형에 끼워맞추려는 '음험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읽어낸다. 소개팅을 수십 차례 해도 번번이 짝 만나기에 실패하는 이들을 흔히 "눈이 높다"고 하는데, 여기서 눈이 높다는 뜻은 두 가지란다. 하나는 자신의 주제를 잘 모르고 있다는 다분히 비난하는 의도. 다른 하나는 "지.덕.체를 골고루 갖춘 1%의 선남선녀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7%의 킹카.퀸카 등 원래 인구가 극히 적은 집단에서 이상형을 찾고 있다"는 확률적 의미다.

하나 더. 여성들이 입에 달고 사는 "그냥 친구 사이야"라는 말에서 대관절 '그냥 친구'란 뭘까. 다음은 지은이가 내린 정의. 첫째, 한 여성에게 어느 정도 흑심을 품었거나 품고 있거나 품게 될 남성 일반. 둘째, 그 여성의 애인이 은근히 싫어하는(혹은 견제하는) 남성 집단. 셋째, 사려깊은 말투와 배려심, 남들이 가끔 쳐다봐주는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남자만 사귀는 친구. 유의어로는 '정말 좋은 남자 선배'나 '자기가 돈 내면서 만나자고 하는 남자 동생'이 있단다.

연애의 단계를 전(前)연애와 유사(類似)연애로 나눈다든가, 사랑을 '그리하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두 가지 표현으로 풀어내는 식의 글쓰기는 다소 어지럽기도 하지만 충분히 즐길 만한 말의 향연이다. 정색하고 쓴 분석서라기보다는 연애 전반에 관해 꽤 섬세하게 쓴 에세이에 가깝다.

이성 사귀기에서 수없이 실패를 반복한 사람(특히 여성), 숱한 경험을 통해 서서히 연애의 '패턴'을 깨닫게 된 사람, 책에도 나오지만 '루저 마인드(패배주의적 정서)'를 담은 유행가(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나 러브홀릭의 '인형의 꿈'처럼)에 아직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강추.

'로맨스 약국'이 비교적 가벼운 터치와 언어학적 감수성을 동원했다면 '왕자는 없다'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사랑과 관계 맺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그 많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며 탄식하는 미혼 여성들, 책 구절에도 있듯 부지불식간에 "자상하고 운동 잘하고 자기 엄마랑 사이 좋고 나를 아껴주면서 돈이 잔뜩 들어있는 은행 계좌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행하기 좋아하는" 남자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지은이들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남녀문제 컨설팅 회사를 차려 16년째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충고는 "백마를 탄 왕자들이 정열에 불타는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주기를 바라는 옛 시절의 로맨틱한 생각을 버려라"라는 것. 현재의 상대에게 '왕자가 될 것'을 요구하지 말아라. 그 순간 당신에게 맞는 진짜 왕자님이 백마 타고 나타나리라, 뭐 이런 얘기다.

이 책의 부제는 '엄마가 결코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들'이다. 사실 20~30대 여성들에게 남자 만나기와 관계 맺기란 일생일대의 관심사 중 하나. 그러나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연애와 결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왜 그랬을까). 책에는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고정관념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한 여성의 남성 선택 폭과 관계 맺기의 스타일을 규정하는 지,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 지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상대방에게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여성들이 남자들을 알아주고 이해할 때 남자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줄 것이다,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남자를 보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서로 다름을 되새긴다 등 유용한 조언들과 더불어.

책을 덮고 나면 "내일 전화할게" 해놓고 며칠 후에 전화하는 남자 때문에 애태워본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비로소 아하, 할 지도 모른다. 사례 인용이 대부분이라 후반에 가면 다소 지치기도 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지은이들의 주장에는 십분 공감이 간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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