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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 보란 바이든, 쳐다도 안보는 김정은…야구로 본 北美 심리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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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바이든의 ‘땅볼 유도’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뉴스1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뉴스1

타석에 들어설 때 타자는 보통 노리는 공이 정해져 있다.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공을 그냥 흘려보내는 타자를 보면서 “저걸 왜 못 쳐”라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이는 치더라도 땅볼 아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칠 수 있어도 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 북한이 그렇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방한 기간(19~23일) 중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언뜻 보기엔 열린 태도의 접근이고, 북한에 관대한 제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으로선 이건 쳐봤자 땅볼 아웃될 가능성이 큰 공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방망이를 휘둘러 보고 싶지만,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북핵 문제 전문가들인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에게 속셈만 간파당하고 손에 얻는 것은 없이 그냥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전날 중앙위원회 8기 3차 전원회의가 폐회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전날 중앙위원회 8기 3차 전원회의가 폐회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뉴스1

미국이 조건 없이 만나자는 건 사실 북한을 향해 ‘연합훈련 취소나 제재 완화 같은 조건 달지 말고 일단 나와서 테이블 앞에 앉으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을 북한 쪽으로 넘겼다고 하지만, 북한은 그런 까다로운 공 말고 깨끗한 직구, 받아치기 좋은 높은 공을 던지라는 이야기다. 이 자체가 조건이다.

이런 북한의 복잡한 심사는 김 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내놓은 담화 두 건에서 드러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2일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을 언급한 데 대해 백악관이 “흥미로운 신호”라고 다소 기대감을 보이자 내놓은 반응이었다. 한 마디로 꿈 깨라는 이야기인데, 그러면서도 김여정 특유의 막말이나 독한 비난은 하지 않았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 발언 관련 김여정 담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 발언 관련 김여정 담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3일 이선권 북한 외무상이 낸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만나기 싫다고는 하는데, 예의 현란한 표현들을 동원한, 왜 싫다는 지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다.

합쳐서 여섯 문장짜리 짤막한 두 담화엔 방망이를 휘둘러보고 싶지만 그래봤자 진루타가 되기는 힘들다는 판단에서 오는 고민이 묻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승부가 나려면 투수 입장에선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낼 유인구를 더 던져야 하고, 타자 입장에선 던지는 공마다 파울로 끊어내 투수가 한가운데 말고는 더이상 던질 데가 없도록 끈질기게 괴롭혀야 한다.

문제는 미국은 그 정도로 화끈한 유인구를 던질 생각이 없고, 북한은 던지는 공마다 끊어낼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 없는 ‘밀당’이 이어지다 결과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즌2’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이는 한국으로선 갈수록 늘어나는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 위에 지고 위협 속에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와 인터넷판 기사. 뉴스1

청와대는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와 인터넷판 기사.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공개된 미 시사 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매우 솔직하고, 매우 열정적이며, 결단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제는 대놓고 핵잠수함까지 만들겠다니 매우 솔직하고, 고모부를 총살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하니 매우 열정적이며, 4층짜리 개성 공동 연락사무소 건물을 한 방에 날려버렸으니 결단력이 강한 사람도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김정은의 인성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에는 위협이다.

여러 비판에도 임기 마지막날까지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 한반도에 평화를 조성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만은 존중한다.
다만 혹자들은 묻는다. 그런 노력을 수비수로서 할 것인지, 누상의 주자로서 할 것인지 말이다. 한국이 허슬 플레이로 투수를 도울지, 도루로 타자를 도울지 두고 볼 일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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