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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도 감동" 93년생 CEO, 홍대 핫플 민지맨션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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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방호복을 생활소품으로 재탄생시키는 119 레오의 이승우 대표가 민지맨션에서 환히 웃고 있다. 오른쪽 가방이 실제 그가 쓰는 자사 제품이다. 우상조 기자

소방관의 방호복을 생활소품으로 재탄생시키는 119 레오의 이승우 대표가 민지맨션에서 환히 웃고 있다. 오른쪽 가방이 실제 그가 쓰는 자사 제품이다. 우상조 기자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감탄하며 주한 외교사절단에게 선물한 가방이 있다. 명품도, 한국 전통 제품도 아닌, 수명을 다한 소방자재를 활용해 만든 가방이다. 1993년생인 이승우 대표의 스타트업 119레오가 만들었다. 기업 이름에 ‘119’를 넣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듯 소방관과 연관이 깊다. 낡은 소방호스를 엮어 의자를, 방화복을 잘라내 가방을 만든다. 재활용에 가치를 더한 업사이클링(upcycling) 컨셉트다.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던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새활용 의류전’ 행사에서도 호평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2021 P4G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새활용 의류전’에서 119레오의 제품을 주한 외교사절 자녀에게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2021 P4G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새활용 의류전’에서 119레오의 제품을 주한 외교사절 자녀에게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여사뿐 아니다. MZ세대의 관심도 뜨겁다. 지난 20일까지 홍대 핫플로 입소문 톡톡히 탔던 민지맨션이 그 증거다. 민지맨션은MZ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일종의 브랜드 편집샵이자 팝업 스토어로, 지난달 28일 ‘리 러브(Re:Love)’를 주제로 오픈했다. MZ세대 놀이터로 화제를 모았다. 두 번째 민지맨션은 여행을 주제로 9~10월께 오픈을 준비 중이다.

MZ세대란 밀레니얼(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과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합쳐서 부르는 용어다. MZ세대를 의인화해서 우리말로 ‘민지세대’라 부른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단독주택을 개조한 민지맨션에서 이들은 방역수칙은 엄격히 준수하면서도 다채로운 즐거움을 만끽했다. 에코백 실크스크린 인쇄를 체험한 뒤 공병에 비건(vegan) 목욕제품을 담아보고,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위두(weDo) 서점을 둘러보며 스탬프를 찍는 식이다. 허나, 아무리 체험을 즐기는 민지라 해도 다리는 아픈 법. 이들을 마당에서 맞이한 게 119레오가 폐소방호스로 만든 의자들이다. 초록색 잔디밭에 노랑 빨강 보라의 알록달록 소방호스 의자가 경쾌했다. 민지맨션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았다.

민지맨션 로고.

민지맨션 로고.

민지맨션에 놀러온 '민지'들, 서영주(왼쪽)·심경원씨가 119레오 의자를 테이블 삼아 안내도를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민지맨션에 놀러온 '민지'들, 서영주(왼쪽)·심경원씨가 119레오 의자를 테이블 삼아 안내도를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승우 대표가 이날 들고 온 가방은 폐방화복으로 만들었다. 촬영을 위한 컨셉트가 아닌가 했지만 실제로 자사 제품을 매일 들고 다닌다며 자신이 만만하다. 그런데 왜, 업사이클링 중에서도 하필 소방자재에 착안했을까. 가족이나 지인 중 소방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사회 문제를 건축을 통해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축을 전공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관심사가 더 다양해졌어요. 소방관분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거다 싶었어요. 열심히 하다보니 한 달에 120분 넘게 만났더라고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밖으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노란색 의자의 커버를 폐 소방호스로 엮어서 만들었다. 아연 프레임을 써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끄떡 없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우상조 기자

노란색 의자의 커버를 폐 소방호스로 엮어서 만들었다. 아연 프레임을 써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끄떡 없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우상조 기자

이승우 대표가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당시엔 소방관의 근로 환경이 지금보다 더 열악했다. 방화복의 수명은 통상 3년인데, 5년 넘겨 착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비용 절감이 이유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 사람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게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근무로 인해 투병 생활을 해도 국가소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산재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화재 현장에 1021회 출동해 350명이 넘는 이들의 목숨을 살렸지만 그 후유증으로 본인은 희소암에 걸려 투병하다 2019년 숨을 거둔 고(故) 김범석 소방관이 대표적 사례다.

이 대표는 “소방관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무 것도 바뀌지를 않으니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했다”며 “그런데 나까지 가만히 있으면 정말 벽이 단단히 굳어버릴 것 같아 나서게 됐고, 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19 번호에 서로를 돕는다(Rescue Each Other)의 첫 글자를 따와 ‘119레오’라고 이름지었다.

알록달록한 119레오 의자가 장식한 민지맨션의 마당. 두번째 민지맨션은 가을에 오픈한다. 윤경희 기자

알록달록한 119레오 의자가 장식한 민지맨션의 마당. 두번째 민지맨션은 가을에 오픈한다. 윤경희 기자

창업 약 1년 뒤부턴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기부금도 전달할 수 있었다. 올해부턴 전라북도 전주,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의 백화점들과 손잡고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화재현장에선 더는 쓰일 수 없지만, 워낙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터라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업사이클링 특유의 분위기도 더해져 민지세대들에겐 의미를 갖춘 아이템이 됐다.

‘민지 CEO’이기도 한 이 대표는 이제 조심스럽지만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방화복조차 사치인 곳들이 있어서다. 그는 “장비가 갖춰지지 않아서 우비를 입고 화재 진압을 하러가야 하는 곳들이 있다”며 “업사이클링을 통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전 세계 소방관의 안전도 도모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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