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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까지 50m 남기고…실종된 구조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일 정오쯤 경기도 덕평물류센터에서 119구급차 한 대가 급히 빠져나와 경기도의료원 이천 병원으로 향했다. 경찰차가 앞뒤로 구급차를 호위했다. 건물 안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계속 새어 나왔다. 이 구급차에는 이날 오전 발견된 김동식(52) 소방경 유해가 실렸다.

19일 오후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실종된 김모 구조대장에 대한 수색이 재개됐다. 김 구조대장은 숨진 채 발견됐다. 심석용 기자

19일 오후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실종된 김모 구조대장에 대한 수색이 재개됐다. 김 구조대장은 숨진 채 발견됐다. 심석용 기자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대장인 김 소방경은 지난 17일 오전 11시20분쯤 현장을 수색하고 내부 진화를 위해 물류센터 지하 2층으로 진입했다. 소방대원 4명과 함께였다. 이날 오전 8시19분 큰불이 잡히면서 현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김 소방경과 동료들이 건물 지하 2층으로 진입한 순간 선반에 있던 물품들이 쏟아져 내렸다. 내부에 쌓인 가연 물질이 무너져 내리면서 불길이 거세졌다. 현장 지휘부는 무전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0분 뒤 대원들이 밖으로 나섰지만 김 소방경은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을 앞세우고 맨 뒤에 있던 김 소방경이 화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고립된 것이다.

동료들은 김 소방경을 구조하려 했지만 거센 화염 탓에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김 소방경은 50분 정도 버틸 수 있는 산소통을 메고 있었다.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불길이 잦아든 19일 오전, 마침내 건물 안전진단을 거쳐 수색작업을 재개했다. 실종된 지 약 48시간만인 19일 오전 10시49분 구조대장은 결국 시신으로 동료들에게 돌아왔다. 그의 마지막 위치는 실종됐던 건물 지하 2층 입구에서 직선으로 5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교대로 불을 끄고 잠시 쉬면서도 물류센터 건물 앞을 지키던 동료들은 구급차가 밖으로 나오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김동식 구조대장(가운데 마스크 쓴 사람)이 구조대원들과 함께 해상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광주소방서 예방대책팀 제공

지난해 김동식 구조대장(가운데 마스크 쓴 사람)이 구조대원들과 함께 해상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광주소방서 예방대책팀 제공

27년간 현장 누빈 베테랑

김동식 구조대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구조대원들과 훈련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광주소방서 예방대책팀 제공

김동식 구조대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구조대원들과 훈련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광주소방서 예방대책팀 제공

김동식 소방경은 27년간 고양· 하남·양평·용인소방서 등에서 구조대와 예방팀, 화재조사팀 등을 거친 베테랑이다. 지난해 1월부터 광주소방서 소방대장으로 근무해왔다. 아내와 20대인 아들과 딸 남매를 둔 그는 평소 소방관이라는 일에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소방관은 튼튼해야 한다”는 본인의 신조에 따라 쉬는 날에도 산에 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등 체력 관리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용인 양지 SLC 화재현장에서도 어깨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현장 근무를 자처했다. 동료들은 그를 현장에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솔선수범한 소방관으로 기억했다. “현장 업무에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사람이었지만, 업무 외엔 자상했다”는 게 동료 소방관의 말이다. 광주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끝까지 생존할 거라 기대했는데 이렇게 돼 안타깝다. 시신을 찾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9일 김동식 구조대장의 빈소가 경기도 하남시 마루공원에 차려졌다. 심석용기자

19일 김동식 구조대장의 빈소가 경기도 하남시 마루공원에 차려졌다. 심석용기자

김 소방경의 빈소는 하남시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영결식은 경기도청장으로 오는 21일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열린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고인에게는 1계급 특별 승진과 녹조근정훈장이 추서될 예정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김 소방경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도 추진한다.

심석용 · 최모란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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