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문화팀장의 픽 : ‘전원일기 2021’
옛 드라마 ‘전원일기’가 화제입니다.
2∼3년 전부터 ‘전원일기’를 방송하는 케이블 채널이 하나둘씩 늘더니 이젠 MBC ON, 엣지티비, 채널 유, KTV 등 7개 채널에서 내보내는 인기 드라마로 자리잡았습니다. OTT 웨이브와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도 다시보기가 가능하니 이제 ‘전원일기’는 흘러간 옛날 드라마가 아니라 언제라도 볼 수 있는 동시대 콘텐트가 된 셈이지요.
화제성에 불을 붙인 건 18일 밤 MBC에서 첫 방송한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입니다. 4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전원일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창회’를 표방하며 1980년 첫 방송부터 2002년 종영 때까지 출연했던 30여 명의 배우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18일 방송에서 끄집어낸 한 세대 전 추억은 예상대로 흥미진진했습니다. 1985년 방송된 ‘전화’ 편에서 집에 전화를 처음 놓고 신기해하는 장면과 친정에 전화 거는 며느리들을 부럽게 바라보던 김혜자가 한밤중에 그 전화를 들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찾는 장면 등이 뭉클하게 다가왔지요. 이제 여든이 된 김혜자, 일흔을 맞은 고두심의 젊디젊은 모습을 다시보는 반가움도 컸고요.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도 있었습니다. 1983년 양파값 폭락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당시, 극 중 농민들이 양파를 모두 갈아엎는 장면을 내보낸 뒤 2주 동안 ‘전원일기’가 방송되지 못했답니다. 방송 다음날 아침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나와 방송 테이프까지 모두 압수했다지요. 그 다음주 ‘전원일기’ 방송시간엔 사전고지도 없이 ‘대통령 기자회견’이 특별방송으로 편성됐고 또 그 다음주에는 뜬금없이 미인대회 방송이 전파를 탔다니 정말 까마득한 옛 세상 일 같습니다.
이런 아련한 이야기가 새삼 인기를 끄는 이유를 평론가들은 “레트로 열풍의 영향” “향수를 자극” “배우들의 명연기 덕” 등으로 다양하게 짚어냅니다. 이 중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자극없이 멍하게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트여서”라는 색다른 분석을 내놨습니다. ‘불멍’ ‘물멍’ 등 멍 때리기 콘텐트의 부상과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란 얘기입니다. 어느 회차부터 봐도 몰입이 가능한 ‘전원일기’의 잔잔한 흐름은 무념무상 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효용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 스리니 펠레이는『멍 때리기의 기적』(김영사)에서 ‘멍 때림’을 뇌가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역설합니다. 절대선으로 추구했던 ‘집중’이 우리에게 도리어 무기력을 안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요. 뇌 영상 연구자답게 비집중 상태, 즉 ‘멍 때리리기’의 효과를 뇌과학적으로도 풀어냅니다. ▶편도체 활성화 정도를 감소시켜 침착한 감정을 형성하고 ▶전두극피질을 활성화해 혁신을 향상시키면서 ▶전측 섬 활동을 증가시켜 자아감을 강화한다는 겁니다. 또 ▶전전두피질의 활동을 복구해 자기 사고에 다시 에너지를 불어넣고 피로감을 줄이는데다 ▶장기기억을 향상시킨다고 하니, 이쯤이면 ‘멍 때림’이야말로 정신건강을 지키는 만병통치약 아닐지요.
다시 만나는 ‘전원일기’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게 됐습니다. 『멍 때리기의 기적』이 제안하는 멍 때리는 방법, ‘해먹에 누워있기’ ‘정원 가꾸기’ 등보다 우리로선 훨씬 따라하기 쉬운 ‘K-멍 때림’ 비법이 될 듯합니다.
이지영 문화팀장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