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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선호씨 전국 항만 곳곳에서 나올 뻔 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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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 앞 컨테이너 모형에 꽃을 꽂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 앞 컨테이너 모형에 꽃을 꽂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진 이선호씨 사고가 전국 어느 곳에서든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물을 매단 줄이 파손됐는데도 방치하는가하면 근로자에게 안전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일 년에 안전을 위해 투자한 예산은 생색내기 정도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의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를 낸 동방 평택지사를 포함한 동방 본사와 14개 지사, 도급회사인 동방아이포트를 대상으로 한 특별감독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특별감독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실시됐다.

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례가 197건이나 됐다. 고용부는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108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하고, 89건에 대해서는 과태료 1억8000만원을 부과할 방침이다.

이선호씨는 평택항 내 컨테이너에서 작업하다 지게차가 한쪽 벽체를 갑자기 접으면서 발생한 충격으로 넘어진 다른 쪽 벽체에 깔려 숨졌다. 작업계획서도 없이 작업한 탓이다. 이번 감독에서 이와 똑같은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이선호씨와 같은 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할 뻔했다는 얘기다.

또 위험 구간에는 근로자의 출입을 금지해야 하는데, 이런 초보적인 안전 조치도 하지 않는가 하면 안전통로조차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구간을 지나다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설령 사고를 피하려 해도 피할 통로가 없었던 셈이다.

짐을 매달아 옮기는 크레인의 와이어로프나 벨트 같은 달기구는 파손돼 있었다. 그러면서도 크레인 하부로 근로자가 무시로 지나다니게 했다. 안전사고를 방치한 꼴이다.

부두가 인접한 장소와 같은 추락위험이 있는 곳에 안전난간 하나 없었다. 침전조와 같은 질식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작업매뉴얼도 만들지 않았다. 안전 보건교육은 실시하지 않았고, 보호장구조차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했다.

이런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가능했던 것은 경영진이 안전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대표이사 신년사에 안전과 관련된 단어나 메시지가 아예 없다. 올해 동방의 안전보건 투자 예산은 2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매출액(5921억원)의 0.04%에 불과했다. 산재예방과 안전담장 책임자조차 없었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동방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확립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라며 "다른 항만기업도 이번 특별감독 결과를 참고해 관련 조치를 신속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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