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무 말려 죽이는  ‘과수 구제역’ 비상…추석 때 과일 귀해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8면

지난 7일 과수화상병이 확진된 충남 예산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굴삭기를 이용해 사과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달 31일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과수화상병이 확진된 충남 예산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굴삭기를 이용해 사과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달 31일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연합뉴스]

“우리 동네 과수원이 몽땅 없어지게 생겼어요.”

전국 340곳 사과·배 농장서 발생 #치료제 없고 전염력 강해 피해 심각 #감염 즉시 매몰해도 3년간 땅 못 써 #예산, 사전방제·이동제한 행정명령

충북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에서 21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서모(62)씨는 과수화상병이 확산한 지역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과수원에 들렀다가 나무 몇 그루에서 검게 그을린 듯한 잎을 발견했다고 한다.

충주의 대표적 사과 산지인 산척면은 2년 전까지 200여 농가가 과수원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과수화상병이 마을을 덮친 뒤 43개 농가로 줄었다. 서씨는 “지난해 과수원 2곳(1만3200㎡)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갈아엎었다”며 “올해 나머지 과수원 3곳에도 병이 번져 농사를 더는 짓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수화상병이 충북과 충남·경북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전국에서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는 20개 시·군 340곳으로 집계됐다. 피해 면적은 162㏊에 달한다. 충북이 188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69곳, 충남 68곳, 경북 11곳 등이다.

예산지역 농가에서 방역하는 모습. [사진 예산군]

예산지역 농가에서 방역하는 모습. [사진 예산군]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나 배 등에서 발생한다. 감염되면 잎과 꽃·가지·줄기·과일 등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는다. 아직 치료제가 없고 전염력이 강해 ‘과수 구제역’ ‘과수 에이즈’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도 안성에서 처음 발생한 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이 병은 올해 감염됐다고 해서 즉시 시커멓게 말라 죽는 게 아니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기도 한다. 발생 원인도 오리무중이다. 나무에 잠복한 균이 적정 기후를 만나 발현되거나 균이 비바람과 벌·전지가위 등을 통해 번지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과수화상병에 감염된 나무를 묻은 밭에는 3년간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피정의 충북농업기술원 식량기술팀장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어 나무 면역력을 높여주거나 소독, 상시 예찰을 통해 감염 나무를 제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자치단체마다 이동 제한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충남 예산군은 지난 4일 오가면의 사과농장에서 과수화상병이 확인되자 과수원 경영자와 작업자에게 사전방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 명령에 따라 과수농가는 화상병 예방·예찰 활동을 강화하고 작업자는 다른 농장 방문이 제한된다. 예산 지역 사과밭은 973㏊로 충남 전체의 58%나 된다.

예산군 관계자는 “(과수화상병이) 보통 6월에 발생하는 데 올해는 봄철 기온이 높아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빠르게 나타났다”며 “발견 즉시 제거하고 땅에 묻어야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과수화상병이 처음으로 발생한 경북지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북 사과밭은 지난해 기준 1만8705㏊로 전국(3만1598㏊)의 59.2%를 차지한다. 방제 당국은 과수화상병이 경북을 중심으로 확산하면 국내 과수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며 예찰·예방 활동을 강화했다.

농촌진흥청은 장마를 앞두고 집중호우가 내릴 것에 대비, 각 자치단체와 농가에 신속하게 매몰작업을 마치도록 촉구했다. 과수화상병 단계를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18일까지 전국 사과·배 농가를 대상으로 예찰도 강화했다.

신진호·최종권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