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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MZ 일자리센터로 변신하는 폴리텍대…지방대 생존 열쇠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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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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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부겸 국무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고용노동부에 특별한 당부를 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학이 어려움을 겪는데, 전국에 실습장을 갖춘 폴리텍대학과 지역 대학을 연계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떠냐”는 내용이다.

김부겸 총리 공생형 지방대 구상 #‘꼰대’형 학사 운영으론 한계 #신산업 중심 유연한 학과 재편 #고도 실습·훈련 체계 연계돼야

폴리텍대학의 전신은 1968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지원으로 설립된 국립 중앙직업훈련원이다. 1998년 기능대학으로, 2008년 폴리텍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학제를 도입했다. 직업훈련을 받은 학생에게도 학위를 줘서 의지를 북돋우자는 취지였다. 이름이 대학이지 본색은 국가가 운영하는 직업 훈련기관인 셈이다.

김 총리의 당부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론과 국책 직업훈련기관의 실습 기능을 접목해 공생 체계를 구축하자는 취지다.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만 가르쳐서는 지방대학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지방대학이 지금이라도 기지개를 켤 방법은 탄탄한 실무 능력을 갖춘, 즉시 활용 가능한 고급 인력을 배출하는 쪽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데 김 총리가 굳이 폴리텍대학을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그의 당부대로라면 폴리텍대학은 지역 기반 고등 교육·훈련체계의 중심대학 대접을 받는 모양새다. 그 저변에 5년 전부터 변신을 꾀한 폴리텍대학의 행보가 김 총리의 눈길을 끈 듯하다.

학위 과정 군살 확 빼는 폴리텍대학.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학위 과정 군살 확 빼는 폴리텍대학.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폴리텍대학도 학령인구 감소의 파고를 이기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2018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개편작업을 하는 중이다. 학위과정의 정원부터 감축했다. 2018년 320명을 감축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395명, 지난해 105명, 올해 145명을 줄였다. 2022년까지 총 1120명(정원의 14%)을 줄일 방침이다. 학위보다 기술 우위의 대학으로 재편하기 위한 시도다.

그에 맞춰 학과도 바꾸고 있다. 전통산업이나 기간·전략산업의 비중을 줄이고, 신산업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ICT 융합, 데이터 분석, 핀테크, 스마트팩토리, 가상현실콘텐트제작,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같은 학과다. 2017년 9개 과에 불과하던 이런 신산업 과정이 올해 53개로 늘었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학과를 유연하게 재편함으로써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학위 과정의 정원을 감축하는 대신 여성이나 고학력 미취업자, 신중년을 겨냥한 비학위과정은 확대하고 있다. 국립 직업훈련원으로의 귀환으로 볼 만하다.

고학력 청년을 대상으로 한 신기술과 신산업 분야 고도 훈련과정인 하이테크 과정에 올해만 1095명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는 소위 SKY 대학 출신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지난해 여행 스타트업인 언캐니(UNCANNY)를 창업한 남지현(31) 대표도 여기를 거쳤다. 연세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분당 융합기술교육원 데이터융합 소프트웨어(SW)학과에 입학했다. 남씨는 “경영학을 전공한 건 사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정보통신(IT) 관련 창업을 시작했는데, 아는 게 없어 난감했다. 마침 폴리텍대학 융합기술교육원에 과정이 있더라.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매일 코딩을 하며 매달렸다. 개발이 재미있더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변신이다. 그 출구에 고도 직업훈련과정이 있었던 셈이다. 대학에서 배운 경영이론과 실습에 기반을 둔 개발기술의 절묘한 접목이 빚은 결과다.

지역 대학이 공생체계 구축으로 취업중심 공유대학으로 변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역 대학이 공생체계 구축으로 취업중심 공유대학으로 변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게 김 총리가 얘기하고 구상하는 공생체계 아닐까 싶다. 지방대학으로 확산해 지역 블록화해보자는 뜻일 게다. 사실 폴리텍대학은 지난해 이 작업에 착수했다. 경남에서다. 경남 공유 대학(USG)이 지난해 닻을 올렸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지역 내 여러 개의 대학이 한 대학처럼 연합해 우수 인재를 공동 육성하는 체계다. 창원에 공장을 둔 LG전자 등 기업도 참여해 USG를 거친 인재를 채용한다. 학생들의 일자리를 위해 대학과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협업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런 공생체계로 거둬들일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추산됐다. 경남지역 청년 고용률이 5% 포인트(p) 상승하고, 산업의 부가가치도 7%p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만 제대로 잡을 수 있다면 굳이 수도권으로 학생들이 몰릴 이유가 없다. 김 총리가 취임 뒤 첫 현장 행보로 지방대학의 일자리센터를 택한 이유도 그것이고, 공생체계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으로 여겨진다. 바꿔 말하면 대학이 재학생의 일자리에 방점을 두고 재편작업을 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학생들은 이른바 주장이 뚜렷하고, 성과를 원하며,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바라는 MZ 세대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꼰대’형 학사 운영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기왕 김 총리가 이런 구상을 내놓은 이상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도 방향 전환을 그것에 맞게 서둘러야 한다. “K-디지털 인력을 양성하겠다”며 기껏 엑셀이나 가르치고, 참여한 청년에게 수당을 주는 퍼주기식의 정책으로는 고용시장에서 느끼는 청년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 그 돈으로 융합기술교육원이나 지난해 울산에 개원한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올해 3월 문을 연 로봇캠퍼스와 같은 첨단 실습 캠퍼스를 조성하는 게 낫다. 김 총리의 구상이 청년 일자리와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여하려면 말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