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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과 예방 사이…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완충 역할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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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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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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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 시행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처벌법’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예방보다 기업과 사업주를 형벌로 다스리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금지’ 행위 제시없는 중대재해법
‘행하라’면서 처벌하는 변종 형법
시행령이 형벌 대신 예방으로 틀어
“법의 취지는 중대재해법 무용화”
저비용 안전문화, 위험 사회 초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정치권이 처벌 수위를 높여 산재를 줄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처벌만으로는 산업재해를 못 잡는다는 얘기다. 행동하기보다 회피하려는 성향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해 처벌을 대폭 강화한 지난해 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올해 1월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이후 4월 말 현재 사망 사고는 10% 넘게 증가했다. 처벌을 면하기 위한 증거용 서류를 만드는 등 현장 관리보다 면피성 활동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까닭이다. 살판난 곳은 법무법인이다. ‘면피’에 쏠린 기업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산업안전팀을 안 꾸린 곳이 없다.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선 셈이다. 정치권이 공포 마케팅을 해 준 탓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시행령에 관심이 쏠렸다. 시행령은 구체적인 법 운용 방안이다. 따라서 시행령을 뜯어보면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집행하려는지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예방과 처벌 사이에서 어떤 묘수를 낼지 궁금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9일 시행령의 뚜껑이 열리자 정부가 처벌과는 거리를 두는 경향을 보였다. 법은 처벌법이지만 시행령에선 예방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권기섭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본부장의 말은 이어진다. “기왕에 법이 제정됐다. 이참에 기업과 사업주에게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 의무 위반보다 안전체계에 관심을 갖고, 부족할 때는 고치며 관리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처벌보다 산업안전의 질을 높이라는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형법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형법과는 딴판이다. 상설적 의무를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어서다. 형법은 살인·절도·폭행·사기 등 금지 행위를 나열하고, 이를 범하면 처벌한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하지 말라는 것을 나열한 법이 아니다. ‘하라’는 것이다. 안 했을 때 처벌한다고 돼 있다. 법체계로 보면 형법의 틀을 한참 벗어난 희한한 변종이다. 어쨌든 초점은 결국 ‘하라’ 는 데 있다. 처벌이 아니라는 얘기다. 권 본부장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처벌로 접근해서 해결이 안 된다”고 한 이유다.

시행령엔 정부의 이런 생각이 담겼다. 처벌 위주의 법에 절묘하게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대표적인 게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 정의다. 노동계가 과로, 난청, 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을 중대재해에 포함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일축했다. 시행령은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환을 ‘급성’ 질환으로 한정했다. 어떤 원인으로 급성 질환이 발생했는지, 그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중대재해로 봤다. 열사병의 경우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런 곳에서 근로자에게 일을 시키면 안 된다는 메시지다. 시행령은 이런 부류의 질환을 24가지로 정리해서 제시했다.

처벌 위주의 산업안전법 나올 때마다 안전사고 더 늘어

처벌 위주의 산업안전법 나올 때마다 안전사고 더 늘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업성 질병 분류가 핵심이었는데, 정리가 잘 됐다”며 “유해물질이나 환경에 대한 관리의무와 책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에만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기준선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예컨대 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로 인정하면 고혈압 환자를 채용하겠는가. 가족력이 있는 사람도 채용을 꺼리게 된다.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은 사고성 재해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중대재해법의 한계를 시행령이 고스란히 들추기도 했다. 안전보건 인력 배치와 예산 편성 관련 조항이 대표적이다. 시행령은 두 사안 모두 ‘적정’의무로 명시했다. 두루뭉술하다. ‘적정’은 죄형법정주의 용어가 아니다. 박 교수는 “업종과 기업 규모, 업무 내용 등 산업현장은 복잡다단하다. 이를 법으로 일일이 규율하겠다는 것 자체가 원시적 불능”이라며 “결국 상대적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게 시행령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무 자르듯 처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행령이 예방에 방점을 둔 이상 경제체제에 안전비용을 이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찰이나 하청뿐 아니라 부품이나 제품 가격에도 안전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박두용 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은 “배달이 대표적이다. 새벽 배송, 총알 배송을 매우 싼 가격에 누린다. 비용을 더 내겠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안전비용에 대한 공짜 또는 저비용 개념이 문화로 굳어지면 위험사회가 된다”고 경고했다.

때맞춰 13일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가 발족식을 갖고 정식 출범한다. 한국노총이 출범식에 즈음해 성명을 냈다. “본부는 예방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감독 기능에 중점을 둔 과(課)를 설치한 것은 노사정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권 본부장은 “노동계가 예방 우선의 정책을 주문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중대재해법의 목표가 중대재해법의 무용화여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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