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생 논의하면서 쉬쉬? 의정 생중계 외면하는 기초의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창원시의회 전경 및 내부 사진. [사진 창원시]

창원시의회 전경 및 내부 사진. [사진 창원시]

전국 지방의회가 개원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상당수 기초의회에서는 의정활동을 생중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방의회는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사업과 예산을 심의·의결한다는 점에서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등 의정활동을 생중계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민과 소통" 명분에도 생중계엔 소극적

중앙일보가 7일 전국 광역·기초의회 등을 취재한 결과 광역의회는 대부분 생중계 시스템을 갖췄지만, 상당수 기초의회는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았다.

경남에서는 18개 시·군의회 중 회기 중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를 생중계하는 곳은 12곳이다. 창원시의회는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의정활동을 생중계하고 있다. 거제시의회는 홈페이지 대신 유튜브에서 회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고성·남해·사천·산청·의령·하동 등 경남 6개 시·군의회는 사실상 생중계를 하지 않고 있다. 사천시의회는 회의 일부만 지역 케이블TV를 통해 방송을 하고 있을뿐 나머지 의회는 일부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예산확보가 안 돼 생중계를 못 하는 상황이다.

대구 수성구의회 전경 [중앙포토]

대구 수성구의회 전경 [중앙포토]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구의 경우 대구시의회가 본회의를 생중계하고 있을 뿐 8개 구·군의회(중구·동구·서구·남구·북구·달서구·수성구·달성군)는 생중계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 기초의회는 본회의 녹화영상을 의회 홈페이지에 게재해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성구를 제외한 모든 기초의회가 지금까지 녹화영상을 올려두었고, 수성구의회도 이번 회기 분부터 녹화영상을 올릴 방침이다. 하지만 의회마다 영상 게재 시기는 천차만별이어서 빠르면 하루 뒤, 늦을 경우는 한 달 내에 영상이 올려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도의 경우 18개 시·군의회 중 화천·고성 2곳이 인터넷으로 본회의 및 특별위원회 회의 등을 중계하지 않고 있다. 나머지 16개 시·군은 의회 홈페이지나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하고 있다. 화천군의 경우 생중계 대신 녹음을 한 뒤 업체에 의뢰해 회의록과 책을 만들고, 해당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고성군은 전체 내용을 녹화하고 자막 삽입 등의 작업을 거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고성군의회 관계자는 “올해 안에 방송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으로 휴대전화로도 생중계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충북은 11개 시·군의회 중 증평·괴산·보은·영동군의회 등 4곳이 인터넷으로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를 중계하지 않고 있다. 충주시의회는 본회의는 생중계했지만, 상임위 회의는 따로 중계하지 않고 있었다. 영동군의회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지 않지만, 녹화영상을 다음날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회의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며 “의원들의 특별한 요구가 없어서 기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22개 시·군의회 중 본회의와 상임위 의사 활동을 인터넷 생중계하는 곳은 순천·여수·나주·화순군의회 등 4곳뿐이다. 본회의만 인터넷 생중계하는 곳은 목포시의회와 구례·곡성·진도군의회 등 4곳으로 파악됐다. 광양시의회는 “본회의와 상임위 의사일정을 생중계하라”는 광양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요구가 이어지면서 생중계 시스템 도입을 결정한 상태다.

전남 광양시의회 내부 모습. 연합뉴스

전남 광양시의회 내부 모습. 연합뉴스

전남도의회도 2010년부터 본회의 생중계는 도입했지만, 7개 상임위까지 생중계 확대는 2019년 11월에야 이뤄졌다. 생중계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지방의회들은 군청 공무원이나 민원인들이 청사 내부에서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실시간 유선 방송이나 편집된 영상 위주의 뉴스, 녹화 영상 게시, 회의록 열람 대체 형태로 의정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초의회는 예산 문제를 이유로 의정활동 생중계 시스템을 도입조차 못한 곳이 많다. 일부 기초의회의 경우는 의정활동 공개를 원치 않는 의원들의 반발로 시스템 도입이 늦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전남도의회 관계자는 “7개 상임위 생중계를 위해 총 13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다”면서 “1개 상임위마다 장비 예산이 1억3000만원 정도 드는데 시·군의회의 경우 상임위 숫자가 도의회보다 적은 4~5개 정도라도 예산 확보는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지방의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진환 광양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방의회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민들의 지적에도 의원들이 생중계 시스템 확대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기만행위”라며 “시민이 직접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정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 주민 알 권리 확보 차원에서 의정활동이 생중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주주의는 정보 공개를 근간으로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소수가 밀실에서 중대한 의사를 결정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인터넷이나 영상물을 활용한 정보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5년 서울시의회 모습. [중앙포토]

1995년 서울시의회 모습. [중앙포토]

김렬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의정활동을 실시간 중계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는 쌍방향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며 “생중계 시스템 구축을 위한 예산과 인력 지원 등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화천·청주·대구·광양=위성욱·박진호·최종권·김정석·진창일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