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보다 내가 더 중요” 스포츠 권력 뒤흔드는 ‘MZ세대 바람’

중앙일보

입력 2021.06.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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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수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기권이 최선인 것 같다”

지난 1일(현지시간) 여자프로테니스 투어 단식 세계랭킹 2위 나오미 오사카가 프랑스오픈을 기권했다. 프랑스오픈은 4대 그랜드슬램 대회로 테니스선수에겐 ‘꿈의 무대’ 중 하나다.

[후후월드]
'Z세대' 테니스 스타 나오미 오사카
인터뷰 참석 종용하자 프랑스오픈 기권
"주최측과 미디어가 권력 쥔 시대 끝나"

나오미 오사카는 인터뷰 거부 논란 끝에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오픈에서 기권했다. [나오미 오사카 SNS]

나오미 오사카는 인터뷰 거부 논란 끝에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오픈에서 기권했다. [나오미 오사카 SNS]

앞서 오사카는 프랑스오픈을 앞둔 지난달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프랑스오픈 동안 어떤 기자회견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선 이미 몇 번이나 대답했던 질문이나 선수를 의심하는 질문이 나온다. 선수들의 정신 건강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경기에 패배한 선수까지 인터뷰를 강제로 하게 만드는 것은 넘어진 사람을 발로 차는 것과 같다”며 “이런 규정이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다. 테니스 그랜드슬램 대회에선 선수가 경기 후 30분 이내 기자회견을 필수로 해야 하는데, 이를 지적하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오사카는 대회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예고한 대로 인터뷰에 나서지 않았다.

프랑스오픈 측은 오사카에게 1만 5000달러의 벌금과 함께 “규정 위반이 계속되면 더 많은 벌금과 실격까지 징계가 내려질 수 있고 향후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도 징계가 적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오사카는 1일 인스타그램에 “대회, 다른 선수들 그리고 내 정신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기권하는 것”이라며 기권 의사를 밝혔다. 그는 “혼란을 가져올 의도가 전혀 없었고,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서도 “내 메시지는 명확하다. 나는 결코 정신 건강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나오미 오사카가 지난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다른 선수들과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대회에서 기권하겠다″고 적었다. 그는 이 게시물에서 자신이 2018 US오픈 이후 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나오미 오사카 SNS]

나오미 오사카가 지난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다른 선수들과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대회에서 기권하겠다″고 적었다. 그는 이 게시물에서 자신이 2018 US오픈 이후 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나오미 오사카 SNS]

오사카는 자신의 아픈 곳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2018년 US오픈 이후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왔고, 이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내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나는 타고난 달변가가 아니고 언론과 말할 때면 최선의 답변을 내놓기 위해 많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2018 US오픈은 오사카를 세계 정상으로 각인시킨 대회다. 2017년까지만 해도 랭킹 68위의 오사카는 이 대회에서 첫 그랜드슬램 정상을 차지하고 단번에 톱 랭킹에 들었다. 당시 오사카는 결승전에서 자신의 우상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대결을 펼쳤다. 윌리엄스는 이 경기에서 심판의 페널티에 격하게 항의했고, 심판에 대한 관중들의 야유가 시상식까지 이어졌다. 결국 오사카는 우승하고도 당혹감에 눈물을 쏟았다.

2018년 US오픈에서 나오미 오사카(왼쪽)가 21살의 나이로 세리나 윌리엄스(오른쪽)를 꺾고 메이저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에서 있었던 윌리엄스와 심판과의 마찰로 오사카는 경기에서 이기고도 눈물을 흘렸다. [AP=연합뉴스]

2018년 US오픈에서 나오미 오사카(왼쪽)가 21살의 나이로 세리나 윌리엄스(오른쪽)를 꺾고 메이저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에서 있었던 윌리엄스와 심판과의 마찰로 오사카는 경기에서 이기고도 눈물을 흘렸다. [AP=연합뉴스]

MZ세대, 기자회견 얽매이지 않아

1997년 Z세대인 오사카의 이번 기권을 두고 ‘스포츠에 불어닥친 MZ(밀레니얼·Z 세대) 바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메이저 대회 조직위와 그 배후의 거대 미디어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던 시대는 끝났다”면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오사카는 광범위한 변화의 선두에 서 있고, 좋든 나쁘든 이번 사태는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스포츠 협회와 미디어 등 기득권은 이제 다른 태도를 가진 신세대 스포츠 스타들을 마주하고 있다”면서 “소셜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MZ세대는 기자회견과 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정신 건강과 같은 민감했던 주제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오미 오사카의 인터뷰 거절과 기권을 두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MZ세대의 오사카가 스포츠 권력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AFP=연합뉴스]

나오미 오사카의 인터뷰 거절과 기권을 두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MZ세대의 오사카가 스포츠 권력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AFP=연합뉴스]

과거 스포츠 문화에서 거대 미디어는 팬과 스타 선수의 유일한 소통 창구로 많은 권력을 갖고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팬과 스타 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게 스포츠 권력 변화의 핵심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미국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인 빌리 진 킹도 지난달 31일 “우리 시대에는 언론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오사카와 같은 젊은 선수들에겐 전통적인 언론은 더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이티 국적 일본인

오사카는 서양 선수들이 톱 랭킹을 휩쓰는 있던 테니스에서 아시아 국적으론 최초로 그랜드슬램 단식 2개 대회(2018 US오픈, 2019 호주오픈)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0년 5월 연간 약 374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역대 여자 선수 수입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른쪽부터 나오미 오사카 선수와 아빠 레오나르도 프랑수아, 엄마 오사카 다마키 [나오미 오사카 SNS]

오른쪽부터 나오미 오사카 선수와 아빠 레오나르도 프랑수아, 엄마 오사카 다마키 [나오미 오사카 SNS]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의 미국 국적인 아버지 레오나르도 프랑수아와 일본인 어머니 오사카 다마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플로리다주에서 테니스를 배웠다. 미국과 일본 이중국적이던 오사카는 미국보다는 일본 국적이 선수 지원 등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전략적으로 일본 국적을 택했다고 한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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