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깨부순 파리의 여시장, 佛 첫 여대통령에 도전장 [후후월드]

중앙일보

입력 2021.09.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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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 [AFP=연합뉴스]

안 이달고 파리 시장.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4)이 좌·우에서 날아오는 여성들의 펀치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얘기입니다.

재선에 도전하는 중도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 소속 마크롱 대통령에게 좌·우 정당 소속 두 여성이 동시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먼저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 소속 마린 르펜(63) 대표입니다. 지난 프랑스 대선 때 마크롱 대통령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었죠. 이 때문에 당초 내년 대선은 마크롱과 르펜의 '리턴 매치'가 될 거란 전망이 많았습니다만, 여기에 파리 시장이 끼어들며 대선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62) 시장입니다. 그는 최초의 여성 파리 시장이 된 데 이어 르펜 대표와 함께 첫번째 여성 프랑스 대통령에 도전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2014년 파리 시장에 당선된 이달고는 지난해 재선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어느 나라나 수도의 시장은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로 꼽히죠.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3선 파리 시장이었습니다. 이달고의 출마 선언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사회주의자로도 유명한 이달고 시장은 "프랑스 사회의 분노와 분열을 치유하고 환멸에 빠진 저소득 노동자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민자 출신인 자신의 배경을 강조하며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내가 가졌던 것과 같은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대선 판세에 균열을 낸 그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뿌리부터 사회주의자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 [AP=연합뉴스]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 [AP=연합뉴스]

이달고는 1959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일가는 이달고가 두 살 때 프랑스로 이주해왔습니다. 이달고의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재봉사였습니다. 이달고가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달고의 생애가 오만한 이미지의 마크롱 대통령에 필적할 만한 대목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달고는 뿌리부터 사회주의자입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페인 사회주의자로, 독재 정권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갔고 체포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스페인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이달고의 아버지는 1961년 가족을 이끌고 프랑스로 이주했고, 그렇게 프랑스 남부 리옹의 임대 주택에서 자라게 된 이달고는 14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이달고는 리옹 3 대학에서 사회법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사회당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한 건 1990년대였습니다. 7세 연하인 남편 장마르크 제르맹(55)도 사회당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마르틴 오브리 전 노동부 장관 내각에서 함께 일하다 사랑이 싹터 2004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제르맹은 2010년 파리마치와의 인터뷰에서 이달고에 대해 "파워풀한 여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 아르튀르(20)는 2002년에 낳았는데, 그는 영불 해협을 헤엄쳐 건넌 최연소 프랑스인이라는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파리를 녹색 도시로 만들다 

프랑스 파리시의 샹젤리제 거리 녹지 조성 프로젝트 조감도.[PCA Stream]

프랑스 파리시의 샹젤리제 거리 녹지 조성 프로젝트 조감도.[PCA Stream]

이달고는 프랑스 좌파의 거두 베르트랑 들라노에(71)의 눈에 들어 그가 파리 시장을 지내는 동안 부시장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시장 시절 그는 노동시간 감독과 남녀평등 업무로 시작해 나중에는 직업교육, 문화정책, 도시계획을 총괄했습니다.

시장으로서의 이달고는 친환경 파리 도시 계획과 반(反) 내연차 정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2014년 전기 오토바이 대여, 공공주택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고 2020년에는 파리를 생태 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내걸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파리에 주차장 6만개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대폭 늘리겠다는 내용 등이 공약에 포함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올해 파리의 명소 샹젤리제 거리를 거대한 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달고 시장은 "2억5000만 유로(약 334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를 반으로 줄이고 남는 공간을 보행자 공간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보행자 거리를 녹지로 만들어 1.9 km의 파리 중심부에 '놀라운 정원'이 생길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현재 8차선 도로가 있는 샹젤리제 거리의 도로 절반을 녹지로 만들어 대기오염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복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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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파리시는 도심에서 최고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면서 뜨거운 찬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이달고 시장표 도시 계획입니다. 그의 선명한 색깔은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부르고 있습니다. 재임 기간 파리의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등 녹색 캠페인을 추진해 주로 젊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나는 블링블링 아닌 차분 스타일이 좋아요"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련된 '파리지앵'이기도 한 이달고는 여성 정치인이라면 으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야인 패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모델이 아니라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블링블링'(전직 패션 모델 아내를 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별명)이 아닌 차분한 스타일이 좋아요"라고 말입니다. 타임지는 그가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며 "그의 옷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파리 시장으로서 고수하고 있는 개인적 철학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는 "나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듭니다. 주말이 적고 휴일은 더 적지만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선택이자 남편과 가족이 받아들인 삶입니다. 다만 유명한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은 내 아이들은 대중의 시선과 여러 공격을 감수해야만 하기에, 간단하지는 않은 선택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나침반은 '가치'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점수가 낮을 때, 나는 나의 가치를 되짚어보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싶은지', '일반적인 관심사는 무엇인지'. 파리 시장은 자신에 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입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평생 여론조사가 틀렸음을 증명"

안 이달고 파리 시장. [로이터=연합뉴스]

안 이달고 파리 시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이달고는 재선에 도전하면서 "대권을 꿈꾸지 않는다" "멋진 도시의 친환경적 건설이 관심사"라고 했지만, 시장 임기를 4년 남기고 돌연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가 속한 사회당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이후 지지율이 추락한 상태입니다. 올랑드의 잇따른 실정 탓인데 2017년에 재선 도전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달고가 사회당을 재건할 주인공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마크롱(24~26%)과 르펜(19~23%)이 양강 구도를 달리고 있고 이달고는 7~9%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이달고가 돌풍을 일으킬 지 주목됩니다. 이달고는 지난달 파리마치와의 인터뷰에서 10% 미만에 불과한 자신의 지지율과 관련해 "나는 평생 여론조사가 틀렸음을 증명해왔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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