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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이용구 진술 반박하자, 경찰 거짓말탐지검사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뒤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지우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3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그는 이날 변호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사건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8일 해당 기사에게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송금했다는 사실은 시인했지만, 영상 삭제의 대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기사 “폭행 피해자를 증거인멸 입건” #중앙지검, 영상 확보하고 뭉갠 의혹 #이 “1000만원 건넨 건 합의금일 뿐” #청와대, 이용구 법무차관 사표 수리

이 전 차관은 “통상의 합의금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변호사였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위 금액을 드렸다”고 해명했다. 또 “‘영상을 지우시는 게 어떠냐’고 말한 적은 있지만 택시기사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영상이 제3자에게 전달되거나 유포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뿐 블랙박스 원본 영상을 지워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경찰·청와대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폭행 영상을 확보하고도 6개월 동안이나 사건 처리와 인사 조처를 하지 않아 이 전 차관이 버젓이 차관직을 수행하도록 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전 차관은 그의 말대로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고위 공직자였던 만큼 이성윤 중앙지검장에게는 물론이고 청와대에도 이 사안이 보고됐을 것”이라며 “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6개월 동안 법무부 차관직을 수행하게 한 청와대·검찰·경찰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전 차관은 검찰 인사 움직임이 일었던 지난달 28일에서야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는 3일 사표를 수리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경찰의 사건 무마 의혹은 서울중앙지검이, 증거인멸 교사 혐의는 경찰이 나눠 맡은 것을 두고 “검경이 사건을 분리해 진행하는 탓에 사건 처리에 더욱 오랜 시일이 걸렸을 것”이라며 “이것이 검찰개혁의 효과인가”라고 꼬집었다.

한편 택시기사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 만나 “이 전 차관의 진술을 반박하자 경찰이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이 전 차관은 경찰에서 “합의할 때 A씨가 먼저 ‘뒷문에서 내려 깨운 거로 말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만약 뒷문에서 내린 뒤 깨우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1일 A씨를 불러 폭행 이후 합의 과정에 대한 이 전 차관 진술의 진위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A씨는 “그 제안은 내가 이 전 차관에게 한 것이 아니라 이 전 차관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경찰이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요구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자신이 증거인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실도 몰랐던 상태였다고 했다.

A씨는 “(1일 저녁) 보도를 보고서야 내가 입건된 사실을 알았다. 조서에 지장을 찍긴 했지만, 경찰로부터 ‘입건 됐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 후 영상을 지웠다고 밝힌 적은 있지만 실제로 지운 적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증거인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수민·정유진·편광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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