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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한시 두 딸 목숨 잃었다, 사형 선고해달라" 부모의 오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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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억울합니다. 두 딸이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었어요. 저와 아내는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에요.”

대전고법, 자매 살해 30대 항소심 첫 공판

지난해 6월 25일 충남 당진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매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경찰에 긴급 체포된 김모씨가 경찰 호송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지난해 6월 25일 충남 당진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매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경찰에 긴급 체포된 김모씨가 경찰 호송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언니는 왜 살해했나" 판사 질문에 '묵묵부답' 

1일 오후 2시50분 대전고법 형사3부(정재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모(34)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끝난 뒤 유족은 절규했다. 피해자의 부모는 두 딸을 살해한 김씨에 대한 항소심 기일이 잡히자 충남 당진에서 대전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애초 김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은 지난달 11일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당일 ’감기몸살 기운이 있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히자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3주가 연기된 이날 첫 공판이 진행됐다.

김씨는 지난해 6월 25일 오후 10시30분쯤 충남 당진시의 한 아파트에서 여자친구 A씨(38)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A씨 언니(39) 집에 침입, 방에 숨어 있다가 이튿날 새벽 돌아온 그를 살해했다.

재판부 "왜 일찍 자백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는 김씨가 경찰·검찰 수사과정에서 일찌감치 자백하고 범행을 인정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범죄로 이미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김씨가 ‘자백과 범행 인정’이 재판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정재오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어떤 의미에서 자백했는지 의문이며 법원이 뭘 중시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재판부는 진정한 참회인지 반성인지, 입으로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 일반인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범죄”라며 “특히 두 번째 살인은 치밀하고 잔인하게 이뤄진 범죄”라고 설명했다.

대전고법 형사4부는 1일 오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항소심 첫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 형사4부는 1일 오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항소심 첫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신진호 기자

김씨는 “왜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나, 왜 언니까지 살해했냐”는 정 부장판사의 연이은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부모는 엄벌을 탄원하고 왜 (우리) 딸들이 죽어야 했는지 억울해하고 있다”며 “검찰은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항소한 만큼 대법원 사형기준 판시의 요소를 살펴보고 피고인의 심리상태 등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말했다.

김씨, 당진서 자매 살해 후 도주 

김씨는 지난해 6월 자매를 살해한 뒤 언니의 차를 훔쳐 울산으로 달아났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도 받고 있다. 도주 과정에서 훔친 여자친구 언니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고 여자친구 휴대전화로 가족과 지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도주 중 언니가 운영하던 가게 직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묻기도 했다.

지난해 6월 25일 자매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충남 당진의 한 아파트 입구에 출입을 금하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지난해 6월 25일 자매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충남 당진의 한 아파트 입구에 출입을 금하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그의 범행은 지난해 7월 1일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부모의 신고로 드러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2곳에서 각각 숨져 있는 A씨 자매를 발견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 방치된 시신은 이미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한 상태였다.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지난해 7월 2일 김씨를 긴급 체포한 뒤 구속했다.

아버지 "두 딸 살해당했을 때 인생 산산조각"

김씨는 구속 기소된 후 1심 재판부에 16차례나 반성문을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서는 “여자친구와 다투다 살인을 저질렀고 도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언니 집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A씨 자매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딸의 남자친구가 제 딸과 언니인 큰딸까지 살해하였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엄벌에 처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제 인생은 두 딸이 살해당했을 때 산산조각이 났다”며 “심인 미약을 주장하는 범인이 제발 마땅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25일 충남 당진에서 발생한 자매 살해사건과 관련해 자매의 아버지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다. [중앙포토]

지난해 6월 25일 충남 당진에서 발생한 자매 살해사건과 관련해 자매의 아버지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다. [중앙포토]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1부(김수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참회하고 속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 반성문 16차례 제출…1심선 '무기징역'

이어 “피고인은 연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언니까지 살해, 피해자들이 심한 고통과 함께 삶을 마감하도록 했다”며 “부모는 두 딸을 잃었고 어린 자녀는 더는 엄마를 볼 수 없게 됐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지난달 28일 숨진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로 PC방 등에서 5차례에 걸쳐 106만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산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로 김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전고법 형사3부는 이 사건을 병합 처리할 예정이다.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지난 1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지난 1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김씨에 대한 항소심 두 번째 공판은 7월 13일 오후 2시50분 대전고법 231호 법정에서 열린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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