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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녁은 대양 너머 미국” 북, ICBM 발사 재개 명분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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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미 정상회담 뒤 열흘 만에 북한이 침묵을 깼다. 문제 삼은 건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였다. 조만간 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사일 지침 종료 문제를 비난의 소재로 정한 건 한·미 밀착 행보에 맞서 북·중 결속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미사일 지침종료 관련 개인 논평 #미국 직접 겨냥했지만 수위 조절 #문 대통령엔 “설레발 실로 역겹다” #김기현·서욱 “북 무례한 언행” 비판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조선중앙통신은 31일 김명철 국제문제평론가 명의의 ‘무엇을 노린 미사일 지침 종료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당국 차원의 성명 등 공식 입장이 아닌 평론가 개인 명의의 논평을 낸 건 수위 조절 차원으로 보인다. 개인 명의의 논평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상대를 비난하면서도 수위에 대한 해석 여지를 남기는 건 북한이 자주 활용해온 방식이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특별한 공식 직위나 직함에 따라 발표된 글은 아니며, 일부 전문가들은 발표 형식으로 볼 때 수위가 낮다는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를 염두에 두고 미리 정당성 확보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저들이 추구하는 침략야망을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의 자위적인 국가방위력강화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소리가 없게 되였다”며 미사일 주권을 주장했다. 또 미국을 향해 “우리의 자위적 조치들을 한사코 유엔 ‘결의’ 위반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추종자들에게는 무제한한 미사일 개발권리를 허용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우리의 과녁은 남조선군이 아니라 대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라고 경고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미사일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에둘러 엄포를 놓은 셈이다. 북한이 조만간 시험 발사에 나선다면 지난 3월에 이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수준의 무력시위부터 재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9일 동안 침묵을 지키다 꼬투리를 잡은 소재가 미사일 지침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북한을 사정권 안에 포함하는 한국군의 미사일 개발은 2001년 1차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이미 허용됐다. 이번 지침 종료의 핵심은 한국군 미사일의 800㎞ 사거리 제한이 없어지며, 서울에서 950㎞ 떨어진 베이징이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논평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선 “이 기회에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지역나라들의 조준경 안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민 남조선 당국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을 저질러놓고는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이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가 원수에 대한 예의 없는 언행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매우 부적절한 언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SNS에 “저급한 용어를 논평이랍시고 남발하는 북한은 역시 세습 독재국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존엄과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막말에 대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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