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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는 이용구, 피고인 박범계…'지체된 정의' 두 장면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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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지체된 정의’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28일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원인이 된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약 7개월 만이자 차관 취임 후 약 6개월 만입니다. 검찰 개혁 등 일 많은 시기에 사명감을 접는 심경이 착잡할 겁니다.

이 사건은 유독 진행 상황이 더디고 묘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변호사 신분이었던 이 차관은 술 취한 상태로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는 등의 폭행을 했습니다. 이후 택시기사는 합의를 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경찰은 반의사불벌 규정을 적용해 내사 종결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양파처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폭행이 가중처벌 대상인 ‘운전 중 폭행’인지를 따져야 했는데, 경찰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도 없다고 했다가 택시기사가 보관한 동영상이 뒤늦게 공개돼 당황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경찰관이 택시기사에게 “못 본 거로 한다”는 말까지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봐주기 의혹’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 1월 말 진상조사단을 꾸렸습니다. 뒤늦게 확인된 진상은 누군가의 말대로 ‘냄새’가 납니다. 당시 경찰서에서는 폭행 피의자가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거물급’이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중요 사건이 아니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경찰서의 해명도 거짓이었습니다. 다만, 진상조사단은 “서울경찰청 지휘라인까지는 보고가 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력 인사에 대한 조사 사실이 보고되지 않는 것도 경찰청 지침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직 ‘봐주기’는 구체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의혹으로만 끝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일반 시민은 경험할 수 없는 친절과 배려가 이 차관에게 넘쳐난 건 분명해 보입니다. 피의자가 될 위기에서 만난 경찰은 ‘천사’였습니다. 이 차관이 옷을 벗었으니, 이제 입 닥치고 의심을 접어야 하는 걸까요.

지난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차관. 연합뉴스

지난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 참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차관. 연합뉴스

지난 26일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서울남부지법에 재판을 받으러 나왔습니다. 2년여 전인 2019년 4월의 국회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때의 여야 충돌 때 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놓고 벌어진 당시의 ‘사생결단’에 비하면 재판은 지지부진합니다. 기소된 지 6개월 만에 첫 재판이 열리다 보니 재판장이 “피고인 직업이 국회의원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바뀐 거죠”라고 묻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법무부 장·차관의 두 장면을 그저 한국 사회의 ‘웃픈 현실’로 치부하기엔 찜찜합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란 법언이 떠올라섭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7년 3월, 페이스북에 이 말을 적기도 했습니다. 최순실 특검의 성과를 칭찬하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적폐청산을 약속하면서 ‘지체된 정의’를 경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민이 광장의 특별검사가 돼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4년여 전의 장면이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는 영어명을 가진 법무부의 장·차관 모습과 대비됩니다. 정의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의 사건이 왜 이리도 지체와 지연으로 얼룩졌는지. 그 뒤죽박죽 속에서 외치는 “개혁과 정의”가 국민들 귀에 들릴지 의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개혁이 아니라 지체된 정의를 서둘러 되돌리는 게 아닐까요.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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