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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존중되는 법 절차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형사소송법의 목적은 국가형벌권의 행사를 통해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그 과정에서 자칫 유린될 수 있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함에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자백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고 인신구속의 요건을 엄격히 하고 있는 것은 그 같은 인권보호의 제도적 장치다. 무죄추정의 원칙, 묵비권의 인정과 고문의 금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구간적부심사청구권 등 이른바 「적법절취」의 보장이 모두 그런 제도다.
그러나 우리사회 형사제도운영의 실제에서 그 같은 법의 정신과 명문규정은 너무도 자주 무시되어 왔다. 자백은 아직도 「증거의 왕」인양 간주되어 수사기관에선 자백을 얻기 위해 고문·폭행 등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일이 잦았고,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행해져야할 구속이 수사편의를 위해 남용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법원이 『검찰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수뇌혐의 공무원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구속영장 발부 전 심문을 의해 피의자 출두를 요구했다가 검찰이 거부하자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거는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는 인권보호를 지향하는 법원의 진취적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형사소송과정에 아직도 남아 있는 구시대적 관행이 재검토되고 시정되기를 촉구한다.
자백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히 하는 것은 80년대 이후 관광버스 안내양 살해사건, 원효로 노파살해사건,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 등 큰 사건에서 법원이 일관되게 취해온 태도이지만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무리한 수사는 아직도 완전히는 시정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서울형사지법의 판결이 시준하는 대로 인권유린의 가혹행위가 검찰에서 조차 행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법질서의 권위와 신뢰를 흔드는 범법행위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서울 동부지원의 영상기각에서 제기된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 인권옹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 이 문제를 놓고 검찰의 견해차와 논란은 오래된 것이지만 법조계의 다수 의견은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모아지고 있다.
체포·구속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가장 고도의 형태이며 정신적·육체적으로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적법절차의 원리가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구속 후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사후청문을 보장하는 구속적부심 제도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사전에 청문절차를 보장하는 필요적 구속 실질심사제도 헌법적 요청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따라서 이 문제의 논의는 현행의 법규정만을 놓고 법원과 검찰간에 근거가 『있다』 『없다』는 논란을 벌일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
민정당이 밝혔던 대로 민주화를 위한 법제 개선작업의 하나로 당위적 필요성과 현실적 실효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제부터 실제적인 검토와 논의를 해야 할 사안이다. 민주국가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모든 법질서의 위에 있는 근본 규범이라는 원칙과 대부분 이 제도를 도입하고있는 선진제국의 입법례를 유념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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