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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아파트 ‘공무원 특공’ 폐지, 위법 땐 시세차익 환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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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14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가 세종시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특공) 제도의 폐지를 검토하기로 했다.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이 세종시 특공을 노리고 세종시 청사 신축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유사 사례가 속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특히 야3당이 관련 국정조사까지 요구하자, 민주당이 계획에 없던 특공 문제를 당·정·청 안건으로 올리며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정청, 특혜 논란 확산되자 결정 #10년간 2만5636가구 공무원 차지 #김부겸 총리 “국민적 질책 받아들여” #특공 아파트 환수는 사실상 힘들어 #시 “이전 기관 종사자 대책은 필요”

김부겸 국무총리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서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에 관한 문제가 국민께 큰 실망을 끼쳤다”며 “당정청이 세종 이전기관 특별공급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세종시 특공의 당초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판단한다”며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이전기관 특별공급 제도를 이제는 폐지를 검토할 것을 강하게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장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현재 특공을 받고 있는 기관의 특공이 중단될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현재 이전을 추진 중인 기관들도 특공을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법 개정사항이 아니고 시행규칙하고 훈령 개정사항이어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주 공무원들의 정착 편의를 위해 마련된 특공 제도는 당초 취지와 달리 개인적 잇속을 챙기는 특혜로 변질했다. 관평원은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171억원짜리 유령 청사를 짓고 직원 49명이 특공을 받았다. 한전은 3개 지역 사업소를 통합해 불과 15~20㎞ 거리의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특공을 받았다. 대전의 중기부도 30분 거리에 있는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한다는 이유로 특공 자격을 얻기도 했다. 해양경찰청과 새만금개발청은 세종시에서 각각 인천·군산으로 청사를 이전했는데 직원들은 특공 아파트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2010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공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10년간 세종에 공급된 아파트 9만6746호 중 2만5636호(26.4%)를 공무원 등 이전기관 종사자가 가져갔다.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던 정부 약속을 믿고 주택 구매를 미루다 ‘벼락 거지’가 된 무주택자들과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공정은 극에 달했다. 이에 당정청은 ‘특공 폐지’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선 억울하다는 입장이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정부 방침에 따라 세종으로 내려온 것이고, 한때는 미분양이 있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엄청난 비리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난받고 있다”며 “솔직히 세종 온다고 판 서울집은 집값이 더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처음 특공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세종시는 허허벌판이었다. 세종시 조성 초기 인구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취득세 감면 등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하면서 아파트 특공 청약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세종시의 집값이 수직상승하기 시작한 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국회와 청와대, 서울에 남아 있는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거론될 때마다 세종시 집값은 꿈틀거렸다.

결국 전국 최고 수준의 주택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세종시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중윗값이 올해 4억2300만원으로, 서울의 3억8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시에 이전하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 등에 특공을 계속 줘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관평원 직원 등의 아파트 시세차익 환수 여부에 대해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가능한 것은 당연히 환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기관의 특공 아파트 환수는 사실상 힘들다. 관평원이야 특공 대상이 되는 과정에서 불법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취소를 검토할 수 있으나, 다른 기관의 경우 취소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없다. 지금 관련 근거를 만들더라도 분양 시점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법률 조항을 소급 적용하는 것이라 논란이 거셀 전망이다.

정부가 세종시 부동산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적시에 특공 제도를 손질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배경이다. 사실 공직자들이 세종시 아파트를 특공으로 받고는 한 번도 살지 않고 세를 주다 팔아치워 차익을 남긴다는 얘기는 수년 전부터 나왔다. 2016년에는 검찰이 세종시 아파트를 특공 받아 불법전매한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55명을 기소하기도 했다.

한편 행정수도 완성 과제가 있는 세종시는 이날 특공 폐지에 따른 후속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세종시 관계자는 “특공은 세종시가 인구 37만 명의 도시로 자리 잡는 데 밑거름이 됐다”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는 게 맞지만 세종으로 이전할 기관의 종사자가 정착할 후속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손해용·신진호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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