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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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진흥의 사전적인 뜻은 침체 된 상태를 떨쳐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예진흥이란 문학과 예술의 침체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는 의미를 애당초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예진흥원이 문학과 예술을 위해 무엇을 하여야할 것인가는 이 기본적인 의미를 얼마나 행정적인 사항과 조화롭게 합치하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작가·시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좋은 작품의 생산을 위해 노력에 합당한 원고료를 문예지가 지급할 수 있게 고료를 지원해 온 것은 시행상의 여러 착오에도 불구하고 원고료의 현실화에 공헌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보도에 의하면 그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려고 한다. 문예지를 통한·간접지원이 아니라 시인·작가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법이 검토내용의 골격이다.
여러 해 동안 지원해 왔음에도 문예지가 아직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 하고 있느냐는 질책도 재검토 속에는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넘어져 무릎을 다쳐보지 않고 아기가 걸음을 완전히 배울 수 없다는 소박한 이치를 생각해 본다면 언젠가 한번은 우리의 문예지도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아픈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료의 지원이 없을 때 잡지제작의 재정적 결손을 막기 위해 지금 수준의 고료를 아주 낮춰 바린 다든 가, 문예지의 분량을 대폭 축소해 버린다면 발표의 대부분을 문예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에서는 오히려 한국문학의 진흥에 역작용 할 수도 있음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지원을 원칙으로 하면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의 창출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기왕 지원의 재검토를 할 바엔 문학예술전반에 대해 진흥원이 해야할 진흥사업에 대한 새로운 영역도 생각할 시기인 것 같다.
지난날의 문학 예술의 유산은 작품 자체만이 아니다. 작품을 제작한 시인과 작가, 예술가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과 각고의 흔적 또한 중요한 유산임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각고의 흔적들은 그들이 남긴 작품 외의 유품들에서 그 편린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시인과 작가를 포함하는 예술가들의 박물관 건립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신문학 전개이후 한 세기를 헤아리는 기간 동안 주요 시인과 작가들의 흔적을 구체적으로 복원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생가나 작품의 산실들이 더 인멸되기 전에 그것을 복원 간수하는 일은 그 작가의 작품을 간직하는 일만큼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침체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을 진흥이라고 할 때 지난날의 작가와 시인·예술가들의 그 치열한 문학예술에의 열정에 대한 흔적을 통해 온고하며 지신하는 것은 새로운 문학과 예술의 지평개척에 적극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이 곧바로 문예진흥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사람들의 친필 사인 기념탑도 세우는 우리들이 이 땅의 문학·예술가들의 기념비와 박물관 건립은 팽개쳐 두고 그들의 작품 산실은 인명 되는대로 방치해 두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같은 일에도 이제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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