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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개콘 청문회, 패싱당하는 검찰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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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김오수 총장후보 청문회..여당은 증인거부, 야당은 정치공세 #검찰총장 임명도 안됐는데..장관은 검찰개편 인사위원회 소집

1.태산명동서일필..26일 검찰총장 청문회가 그렇습니다. 검찰개혁한다면서 정권이 총동원돼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는 과정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었는데..막상 그 후임 총장 청문회는 한편의 개그콘서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예고됐던 참사입니다. 그토록 중요하다는 검찰총장 청문회에 증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2.국민의힘이 희망하는 증인을 민주당이 모두 거부했습니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참고인 2명’으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국민의힘이 희망한 참고인 가운데 1명을 끼워넣어주었습니다.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입니다. 야당쪽 의사를 반영해준 유일한 참고인이 기생충학자라니..황당합니다.

3.서민 교수는 노사모 출신입니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다가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이건 진보가 아니다’면서 돌아섰습니다. 실망감에선지 배신감에선지..SNS를 통해 문재인 정권을 집요하게 비판해왔습니다. 조국사태를 정리한 ‘조국흑서’란 책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검찰과는 무관합니다.

4.그래서 서민 스스로 참고인이 된 이유에 대해‘제가 증인, 참고인 후보 중 법을 제일 몰라서’라고 말합니다. 서민은 또 ‘민주당이 기생충학자라 참고인 자격이 안된다’고 주장했던데 대해 ‘기생충학에 대한 모독이고, 기생충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서민 교수에 대한 질문도 답변도 김오수에 대한 평가나 검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서민은 ‘존경스럽다. 대권후보로 성장한 것도 저처럼 생각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코미디입니다.

5.부끄러운 장면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서민은 SNS에서 민주당 김남국 의원을 향해 ‘내가 청문회 나간다니 황당하냐, 그래도 정경심 무죄라 우기는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지 않겠냐’는 글로 조롱했습니다.
이를 아는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그 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고..’라며 유도합니다. 서민은 ‘애정어린 비판이었다’며 돌려깝니다. 김남국이‘적절한 질의가 아니다’고 반발했습니다.

6.당연히 제대로된 검증과 공방은 없었습니다. 김오수 후보의 두리뭉실한 답변에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김오수가 법무차관 퇴임후 권력형비리로 알려진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 관련자들을 변호한 사실은..도덕성면에서 결정적인 하자입니다만..‘변호사법상 비밀유지의무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며 함구하는 김오수를 누구도 더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김학의 불법출국금지 당시 법무부차관이었던 김오수가 ‘불법출금을 승인했다’는 의혹 역시 제대로 따져묻지 않았습니다.

7.야당의 증인신청을 전부 거부한 여당의 독선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청문회장을 코미디로 만든 야당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사실 어쩌면..여야가 모두 검증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김오수는 어차피 임명되게 정해져 있으니까..굳이 검찰총장하고 대립각을 세워봤자 좋을게 별로 없을테니까..

8.또 하나..현 시점에서 보자면 검찰총장의 위상이 형편 없이 쪼그라들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대폭 축소하는 조직개편안을 이미 다 만들었습니다. 이미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이 6대 범죄로 제한됐는데, 이번에 이 권한마저 서울중앙지검 전담부에게만 허용하는 개편입니다. 나머지 지검이나 지청이 수사를 할려면 장관과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정권입장에선 서울지검장이 더 중요합니다.

9.박범계는 이런 개편에 따른 인사를 처리할 검찰인사위원회마저 27일 소집했습니다.
신임 검찰총장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검찰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 의견을 들어 제청합니다. 당장 ‘김오수 패싱’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박범계는‘총장 임명되면 공식적으로 의견을 듣는 절차를 가질 예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총장보다 장관이 더 쎄졌습니다.

10.검찰개혁이란 것이 결국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김오수 총장이 청문회에 앞선‘정치적 중립의 방파제가 되겠다’고 다짐한 서면답변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요? 조국과 추미애 장관을 모셨던 김오수의 경력과 행적으로 미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이지만..정치상황에 따라 늘 변해온 검찰인지라 일말의 기대감은 가져봅니다.
〈칼럼니스트〉
202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