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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2년만에 드라마 복귀하는 장미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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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왕년의 인기 탤런트 장미희(46)씨가 2년 만에 다시 안방극장에 돌아온다. 휘황찬란한 카바레 불빛과 함께.

장씨는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SBS 새 일일연속극 '흥부네 박 터졌네'(오후 9시20분.연출 안판석)에서 밤무대 여가수로 출연한다. 상대역은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씨.

이씨가 완고하고 성실한 기존 이미지와 달리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부동산 투기꾼으로 나오는 것도 색다르기는 하지만 장씨에 비하면 많이 약하다. 장씨는 빼어난 외모를 밑천 삼아 이씨를 등쳐먹는 '꽃뱀' 연지로 등장하는 것. 다소 푼수끼도 있고, 애교도 많은 인물이란다.

지난 10일 경기도 일산 SBS 제작센터에서 열린 새 드라마 기자 간담회장에서 그를 만났다. 어느새 오십줄에 가까운 나이지만 검은색 투피스 차림에선 원숙한 기품이 묻어 나왔고, 특유의 한톤 높은 목소리도 여전했다.

장씨는 우선 새 배역에 대해 얼굴에 홍조까지 띠어가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철저히 망가지는 거죠. 의미 부여나 메시지 전달 같은 것에서 벗어나고도 싶었고…. 밝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역할을 기다렸는데 제대로 걸린 거죠."

대학 교수(명지대 연극영상학과)답게 연지란 인물에 대한 분석은 세밀하고 꼼꼼했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욕심도 배어나왔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성적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요부)과는 다소 거리가 있죠. 그냥 '연애 9단'쯤 된다고 할까요. 이해타산적이라기보다는 귀엽고 천진스러운 면이 많아요. 평소에는 그저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돌아다니다 남자만 만나면 꽃단장을 하는 '내숭덩어리'고요."

1976년 18세의 나이로 영화 '춘향전'에 출연하며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한 그의 연기 활동은 10년을 주기로 크게 요동쳤다. 1980년대엔 정윤희.유지인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며 '겨울 여자''적도의 꽃''깊고 푸른밤' 등에서 관능미를 물씬 풍기더니, 90년대에 들어서는 '사의 찬미''애니깽' 등을 통해 일상성을 벗어난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인물을 그려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엔 '엽기 코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일까.

"난데없다 싶은 배역에도 다가가고 있는 중이에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장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이미지는 어느 시상식장에서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말한 것으로 상징되듯 좀 허영스러워 보였다. 90년대 후반 MBC 드라마 '육남매'에서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연기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통에 한동안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것.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이랬다.

"모두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지만 지나치게 희화화된다는 점 때문에 당혹스러웠죠. 그래도 그만큼 많은 분이 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여러가지 편견에도 불구하고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장씨가 연기자로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해 왔다는 점만은 한결같이 높이 평가한다. 이런 장수에는 89년 연기자에서 교육자로 변신한 것이 역설적이지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인기가 조금씩 하락할 무렵, 그는 인기에 대한 욕망을 부여잡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탈피함으로써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장씨는 "학생들은 저를 잘 모르죠. 가끔씩 '어머니가 팬이세요'라는 말은 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미혼인 탓인지 인터뷰 말미엔 결혼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결혼했으면 제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어요(웃음). 서로 공유하는 게 많은 사람이면, 그래서 노년에 같이 뜰을 가꿀 수 있는 남자면 좋겠어요."

일산=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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