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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5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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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살 청신한 얼굴.’ (‘5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묘사한 5월의 이미지다. 계절의 여왕이자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의 비유 대상으로, 약관을 갓 넘긴 그 나이는 안성맞춤이다. 그의 5월 예찬은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는 문구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춘풍에 춘심을 돋운 것이 어디 그뿐이랴. 신석정 시인은 5월이 되면 ‘혈맥은 엽맥이 되고 심장에는 엽록소가 가득 찬 푸른 나무’(‘5월이 돌아오면’)가 되길 소망했다. 괴테는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 계절. 그리하여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하는 계절’(‘5월의 노래’)이라고 5월을 상찬했고, 당(唐)대의 우량사(于良史)는 ‘꽃놀이를 했더니 꽃향기가 옷에 가득하다’고 만춘(晩春)의 정취를 표현했다.

‘4월에 찾아온 그녀가 내 품에서 편안히 머무는 계절’(‘April come she will’)이라는 수식을 5월에 붙인 건 ‘사이먼과 가펑클’이었다. 이렇듯 5월은 활기와 행복이 넘치는 가절(佳節)이다. 어린이날 등의 각종 기념일이 이 달에 몰려있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41년 전의 그 5월 이후 이달은 한국인의 가슴 한쪽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달았다. 중학생이던 박용주 시인이 묘사한 대로 ‘그(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다. (‘목련이 진들’)

그 이후 매년 돌아오는 5월은 매번 새로운 서늘함과 숙연함을 안겨준다. 올해는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다 산화한 두 고교생 안종필·문재학군의 주검 사진이 ‘살아남은 자’들을 슬프게 했다. 뒤늦게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83년 연설도 감동적이었다.

“광주의 한을 푸는 것은 광주의 사람들에게 총질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광주의 한을 민주회복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만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화목하고 단결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비록 일부 정치인들의 ‘5·18 숟가락 쟁탈전’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래도 올해 정치권은 이 유지에 크게 어긋남 없는 행보를 보였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광주에 모여 그 날을 함께 추모했으니 말이다. ‘대선 장삿속’이 사라진 내년 5월 18일에도 그 마음들 변치 않길 바라본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