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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오롯이 뮤지컬인 삶, 최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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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뮤지컬 배우 최정원

권혁재의 사람사진/ 뮤지컬 배우 최정원

2014년, 뮤지컬 배우 최정원을 인터뷰한 장소가
공연장 로비였다.
썰렁한 로비라 분위기를 돌릴 겸
2003년에 인터뷰 사진 찍은 이야기를 건넸다.

“아! 2003년이면 ‘토요일 밤의 열기’ 때
우리가 만났었군요.”

“무려 11년 전 일인데
어떻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시나요?”

“저는 제가 출연한 모든 뮤지컬을
연도별로 다 기억해요.”

이 대답 후, 실제 그가 출연한 뮤지컬과
연도를 줄줄이 읊었다.
스무 살에 ‘아가씨와 건달들’ 단역 데뷔 후,
25년간 29개 배역을 꿰는 삶,
‘나의 삶은 오롯이 뮤지컬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돈 내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행복하기까지 하죠.
솔직히 저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입니다.
제가 먼저 행복해야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잖아요.
공연하는 것도 관객이나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죠.
사실 기부마저도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합니다.”

당시 그는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10시즌 만에 처음으로 ‘단일 캐스팅’ 이었다.
게다가 홀로 서울·지방 111회 공연을 모두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감기 걸릴까 무서워 자다가도 깨서 노래 한번 불러보고,
소리 잘 나오면 안심하고 다시 잡니다.
그래도 환갑 때까지 벨마 역을 하고 싶어요.”

살면서 가장 불완전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그에게 물었다.

“사실 어제 불렀던 노래도
 오늘 노래에 비하면 창피합니다.
예전엔 뭣도 모르고 노래 부른 겁니다.
점점 더 발전할 모습을 생각하면 빨리 나이 먹고 싶어요.”

우리는 늘 그를 당대 최고의 뮤지컬 배우라 칭했다.
그는 스스로 아니었다고 했다.
여태도 매일 나아지는 중이라 했다.
오늘도 그는 '시카고' 벨마 역으로 무대에 선다.
어제보다 나은 최정원으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