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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 선구자 황규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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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황규태 작가

권혁재의 사람사진 /황규태 작가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황규태 작가 사진 작품이 제일 젊네요.”
이는 2018년 영월 동강국제사진전을 들러 본
어느 사진가의 평이다.

당시 황규태 작가가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터였다.

처음 황 작가의 작품을 본 건 이십여 년 전이다.
필름을 태우거나, 겹치거나, 붙여 만든 작품들, 꽤 실험적이었다.

태양을 찍은 필름을 촛불로 태워 만든 녹는 태양(Melting the Sun)’과 함께 선 황규태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태양을 찍은 필름을 촛불로 태워 만든 녹는 태양(Melting the Sun)’과 함께 선 황규태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8년에야 그의 젊은 시절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궁금증 환자예요. 하하.
필름 태우는 작업은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죠.
그런 의외성이 재미를 더하죠.
결국 재미있어서 그리 한 겁니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험적이다.
2019년 삼청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또한 그랬다.
전시 제목이 ‘픽셀(PIXEL)’이었다.
“어느 날 루페(Lupe·확대경)로 TV 화면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안에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들이 보였습니다.
그걸 촬영해 확대했더니 다양한 색과 무늬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다시 확대, 촬영하길 반복하며 마음에 드는 색과 모양을 골라냈습니다.”

2019년 삼청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한 작품 픽셀과 황규태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9년 삼청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한 작품 픽셀과 황규태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처음 루페로 TV 화면을 들여다본 게 1990년대라고 했다.
거기서 비롯된 2019년의 픽셀 전시, 반응이 극과 극이었다.
혹자는 그를 천재라고 했고, 혹자는 사진이 아니라 컴퓨터 장난이라고 했다.
사진계에선 이런 그를 두고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라 칭한다.

최근엔 ‘픽셀 픽시(PIXEL PIXIE)’라는
제목으로 또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전시가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다.

황규태 작가의 〈PIXEL PIXIE〉 솜니움 스페이스 전시전경 /출처 나비타아트

황규태 작가의 〈PIXEL PIXIE〉 솜니움 스페이스 전시전경 /출처 나비타아트

픽셀블록체인 소셜 미디어 ‘피블(PIB)’이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전시를 그에게 제안하여 열리는 전시다.

우리 나이로 여든넷,
그런데도 그의 작품은 그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삼십여 년 전 TV 화면에서 비롯된 픽셀이
이름마저 생소한 NFT 아트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