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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 분노'로 터진 칠레 정치혁명…무소속이 개헌 키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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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5∼16일(현지시간) 이틀간 치러진 칠레 제헌의회 선거에서 우파 여당이 크게 패하며 좌파 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고 칠레 현지 언론들이 17일 전했다.

제헌의회 선거서 우파 집권여당 패배, 무소속 약진 #최장 12개월 논의 거쳐 내년 중순 국민투표 예정 #세계 최초 성비균형제 도입, 원주민 17석 포함 #'남미의 스위스' 칠레 급진적 변화 우려도

지난 2019년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 방침에서 촉발된 칠레의 정치적 변화가 ‘피노체트 헌법’ 등 기성 정치 지형의 격변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10월 23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바케다노 장군 기념 동상 주변에 반정부 시위 군중이 모여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9년 10월 23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바케다노 장군 기념 동상 주변에 반정부 시위 군중이 모여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날 칠레 일간 엘 메르쿠리오는 제헌의회 의석 155석 중 무소속 후보가 48석(31%)을 차지하며 추후 최장 12개월간 진행될 새 헌법 제정 절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 연합과 민주당 등이 속한 중도 좌파 연합도 각각 28석과 25석을 차지했다. 반면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소속된 우파 여당 연합은 37석(23.9%)을 얻어 전체 의석의 3분의 1도 지키지 못했다.

이에 에랄도 무뇨스 칠레 민주당 대표는 “변화의 승리이자 더 품위 있고, 더 공정하고, 더 번영한 칠레로 탈바꿈하려는 국민 열망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칠레 여당이 예상보다 큰 패배에 충격을 받았다”며 “새 조항 제정 반대에 필요한 3분의 1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하며 정부는 급진적인 변화를 막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개헌은 지난 2019년 ‘50원 시위’라고 불린 지하철 요금 인상 방침이 도화선이었다. 전기요금을 10% 인상한 지 몇 주 만에 수도 산티아고 당국이 유가 인상을 이유로 지하철 요금 인상 방침을 발표하자 교육·노동‧의료·연금 등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칠레는 지난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당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오랜 군부독재(1973~1990년) 기간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업 우선 기조를 이어왔다.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에 달하는 라틴아메리카 3위의 부국이 됐지만 빠르게 벌어진 빈부격차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지난달 6일(현지시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오는 10~11일로 예정된 제헌의회 선거를 코로나19로 인해 5월15~16일로 연기하는 안에 서명하기 전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지난달 6일(현지시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오는 10~11일로 예정된 제헌의회 선거를 코로나19로 인해 5월15~16일로 연기하는 안에 서명하기 전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사회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인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2017년 기준 0.45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가장 높다.

이후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10월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국민투표 결과 78%의 국민이 개헌에 찬성했고, 79%가 기존 의원을 배제한 새로운 제헌의회 구성을 요구했다.

칠레의 제헌의회는 세계 최초로 성비 균형제를 도입해 남성 78명, 여성 77명으로 구성된다. 그간 소외된 마푸체, 아이마라, 케추아 등 원주민들도 인구 비례에 따라 17명의 제헌의원을 자체 선출한다.

다만, 그간 칠레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안정적 국가라고 평가받아왔던 만큼 이번 선거 결과가 칠레 내부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날 칠레 증시 IPSA 지수는 전날 대비 9.33% 하락했고, 페소화 가치도 달러 대비 2% 이상 떨어졌다.

칠레 산티아고 투표소에서 16일(현지시간) 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AFP=뉴스1]

칠레 산티아고 투표소에서 16일(현지시간) 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AFP=뉴스1]

무소속 의원들의 이념 성향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헌법 초안 작성에 상당한 진통이 동반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잰 덴 자산운용사 애시모어그룹 연구원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칠레 국민이 피노체트 헌법과 단호하게 결별하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는 분명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헌의회는 앞으로 9개월(3개월 연장 가능)의 토론을 거쳐 헌법 초안을 완성하고 내년 중순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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