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직장생활 50년`

중앙일보

입력

"아이고, 일흔 넘은 할머니가 일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28일 대한은퇴자협회에서 주는 우수 노령 히어로상을 받은 이혜숙(71) 씨는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부터 쳤다. 이씨는 인도.유럽 등으로 의류 수출을 대행하는 BSK인터내셔널에서 13년째 비서로 일하고 있다. 올해 57세인 사장을 포함, 7명이 근무하는 작은 회사다. 이씨의 직위는 부장이다. 사장의 출장 일정을 챙기고, 직원들이 받은 주문장을 번역해 외국 바이어에게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을 한다.

그는 1957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영문과 부설 비서학과의 첫 졸업생이기도 하다. 졸업 후 한국선명회(현 월드비전)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이후에는 독일.스위스계 무역회사에서 각각 10년 넘게 비서일을 했다.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은 스위스계 무역회사인 코사 컴퍼니. 직원 수 250여 명인 이곳에서 71년부터 87년까지 16년간 일했다. 이씨는 "그때가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크게 이룬 시기"라고 회고한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57년은 한국전쟁 후 폐허를 복구하던 때라 아무것도 없었어. 독일계 무역회사에 다니던 64년 우리나라가 드디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다들 좋아했던 게 아직도 생생해."

그는 자신이 수출역군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지금껏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쓰는 몇 장의 e-메일로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사업이 잘 이루어지는 걸 볼 때 내 일이 헛되지 않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어."

코사 컴퍼니 시절 동료가 BSK 인터내셔널을 차리면서 비서로 영입한 것이 올해로 13년이 됐다.

이씨는 현 직장에서 환갑과 칠순을 맞았다. 친구들 중에서는 그만이 유일하게 '현역'이다. "동창회 점심모임에 가서 밥만 급히 먹고 미안하다며 일어나면 '우리 중 아직 너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영광이니 그런 소리 말고 어서 가'라고들 해주니 고맙지."

이씨는 대학 졸업 후 두 딸의 엄마 노릇을 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그렇게 줄곧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내년이면 50년이다. 그는 내년에 은퇴해 여생을 정리해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말이다.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변선구 사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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