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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밖에 없는 기회" 샤넬백 사러 제주도 티켓 끊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명품 브랜드는 역사와 전통,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가치를 강조하며 고유한 시장을 형성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소비자 성향의 변화로 ‘변해야 사는’ 일대 기로에 섰습니다. ‘명품까톡’에선 글로벌 력셔리 업계의 뉴스와 그 이면을 까서 볼 때 보이는 의미를 짚어봅니다.    

제주 신라호텔에 가면 샤넬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바로 지난 3월 19일 문을 연 샤넬 팝업 부티크 얘기입니다. 내달 20일까지만 문을 여는 팝업 매장이지만 의류부터 신발, 액세서리까지 갖출 것 다 갖춘 매장이죠. 오픈 초기만 해도 서울보다 재고가 많다는 입소문이 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덕분에 요즘엔 제주 신라 호텔 투숙객들 사이에선 호텔을 예약하면서 샤넬 매장 예약도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가 돕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힘든데, 제주로 여행 가 샤넬에서 쇼핑하니 마치 해외에 온 기분이 난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여행 기분에 지갑이라도 하나 사서 나온다나요. 샤넬과 신라 호텔의 만남, 이쯤 되면 아주 훌륭한 윈-윈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주도 중문에 위치한 신라 호텔 내에 샤넬 팝업 부티크가 열리고 있다. 사진 샤넬

제주도 중문에 위치한 신라 호텔 내에 샤넬 팝업 부티크가 열리고 있다. 사진 샤넬

제주도의 샤넬 매장은 서울 이외의 국내 지역에서 최초로 문을 여는 팝업 부티크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샤넬의 이런 외유가 드문 편은 아닙니다. 세계적 휴양도시에서 팝업 부티크를 운영하는 경우가 꽤 있으니까요. 프랑스 칸, 생트로페, 쿠쉬빌 같은 곳에선 아예 정기적으로 팝업 부티크를 열기도 합니다.

[명품까톡](3)

휴양도시엔 명품거리가 있다

그런데 왜 휴양도시일까요. 사실 여행과 럭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과거에 여행은 오직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죠. 이동의 자유도 있었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건 여행지에서도 자신의 삶을 똑같이 누리는 데 있었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몇십 벌 챙겨야 하고, 작은 가구들과 개인용 물품을 가져와야 했으니 여행 짐이 이삿짐과 다를 바 없었겠죠. 유명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바로 이런 필요에서 탄생한 브랜드입니다. 1800년대 루이비통은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짐 꾸리는 사람)로 통했다고 합니다. 당시 여행 가방이 둥근 형태로 쌓기 어려웠던 반면, 루이비통이 만든 사각형 트렁크는 쉽게 쌓을 수 있어 환영받았습니다. 여행으로 일어선 브랜드라서일까요. 지금도 루이비통은 매년 도시별로 여행 책자를 만드는 등 여행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죠.

1887년 루이비통의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해트박스. 사진 루이 비통 홈페이지

1887년 루이비통의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해트박스. 사진 루이 비통 홈페이지

샤넬의 첫 패션 매장도 파리가 아닌 리조트의 도시 도빌이었습니다. 1910년 프랑스 파리 깡봉가 21번지에 모자 가게를 내 명성을 얻은 가브리엘 샤넬은 1913년 첫 패션 부티크를 도빌의 공토-비롱가에 엽니다. 초반에는 주로 부유층 여성들을 위한 야외용 의상을 팔았는데, 지금까지도 가브리엘 샤넬의 전설적 디자인으로 남은 스트라이프 스웨터와 세일러 바지 등이 대표적이죠. 이는 선원들의 옷에서 영감을 받은 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빌에서의 가브리엘 샤넬. 사진 샤넬 홈페이지

도빌에서의 가브리엘 샤넬. 사진 샤넬 홈페이지

철도가 생기면서 휴양 문화가 중류층까지 확산했지만, 여전히 여행은 일부 있는 사람들의 사치였습니다. 해변은 휴양을 온 사람들이 일상복이 아닌 해변에서 입는 특별한 옷으로 자신의 취향을 뽐내는 런웨이였죠. 1900년대 중·후반 이후엔 제트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부유층의 패션을 일컬어 ‘젯셋룩(Jetset look)’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어요. 바로 오늘날의 공항 패션이에요. 지금도 유럽의 유명한 휴양도시에는 명품 거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놀기 위해 모였으니 이들을 위한 소비 지대가 형성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여행자들을 위한 옷, 크루즈 컬렉션

그뿐만 아니라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정기적으로 ‘크루즈 컬렉션’을 출시하고 있죠. 크루즈를 탈 때 입는 옷이냐고요? 절반 정도는 맞는 얘깁니다. 크루즈 컬렉션은 또 다른 말로 리조트 컬렉션으로 불리는 데요, 주로 여행지에서 입을만한 가벼운 옷들을 선보이는 거죠. 크루즈 컬렉션은 1980년대 지방시·샤넬·랄프로렌 등이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북반구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선보였던 의상 컬렉션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코트를 입는 계절에 갑자기 여름 나라로 여행을 떠나니 수영복이나 가볍게 걸칠 수 있는 로브 등을 구매할 곳이 마땅치 않은 부유층을 위해 판매하기 시작한 겁니다.

미우미우 2020 리조트 컬렉션 사진 미우미우

미우미우 2020 리조트 컬렉션 사진 미우미우

물론 지금은 누구나 여행을 누리는 시대입니다. 자연히 명품 브랜드가 소개하는 크루즈·리조트 컬렉션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했죠.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지금의 리조트(크루즈) 룩은 여행 갈 때 입는 옷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패션을 통해 향유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여행이라는 테마에 맞춰 표현하는 컬렉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행을 가서 입는 옷이라기보다는 여행 느낌이 나는 가벼운 옷들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발표되는 크루즈 컬렉션들을 보면 편안한 실루엣의 니트와 재킷, 티셔츠 등 일상복으로 활용하기 좋을 만한 옷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 한층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인기도 많은 편이죠.

패션, 여행이라는 환상을 팔다

팬데믹이 있기 전까지 명품 브랜드는 이 크루즈 컬렉션을 아주 성대한 형식의 쇼로 보여주었습니다. 정규 컬렉션이 자신들의 본거지인 파리나 런던, 밀라노 등에서 열렸던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여행하며 이 컬렉션들을 보여줬죠. 루이비통은 모나코·팜스프링스·리우데제네이루·교토에서, 샤넬은 싱가포르·두바이·서울·하바나에서, 디올은 산타모니카에서, 구찌는 피렌체에서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원정 패션쇼 인만큼 당연히 큰 비용이 들었겠죠. 정규 컬렉션도 아닌데, 크루즈 컬렉션에 왜 이렇게 공을 들였을까요.

2018년 5월 미국 LA 근교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디올의 크루즈 쇼. 사진 디올

2018년 5월 미국 LA 근교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디올의 크루즈 쇼. 사진 디올

패션은 늘 환상을 팝니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들에게 여행만큼 환상적인 게 또 있을까요. 늘 하던 방식과 장소를 벗어나 광활한 사막 위, 고색창연한 미술관 안, 이국의 길거리에서 진행된 패션쇼는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열망을 심어주기 충분한 압도적 이미지였습니다. 패션이 여행이라는 환상을 파는 순간이었죠.

아쉽게도 지난해에는 이런 이국적 풍광의 크루즈 쇼를 볼 수 없었어요. 정규 컬렉션 쇼도 열리지 못하는 마당에, 전 세계를 돌며 진행되는 쇼가 열리기 만무했죠. 물론 디지털을 활용해 공개됐던 크루즈 컬렉션은 여행이라는 달콤한 탈출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옷으로나마 잠시 위로를 주기도 했습니다. 백신이 도입되고, 암울한 팬데믹도 조금씩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반갑게도 조금씩 크루즈 쇼 재개 소식이 들려옵니다. 얼마 전 샤넬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열린 크루즈 컬렉션을 영상으로나마 공개한 바 있습니다. 디올은 오는 6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크루즈 쇼를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여행이 고픈 요즘, 간접적으로나마 그리스를 느껴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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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기자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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