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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까톡] 가방 불태우더니…코로나 만난 명품업계 '캡슐컬렉션' 눈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명품 브랜드는 역사와 전통,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가치를 강조하며 고유한 시장을 형성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소비자 성향의 변화로 ‘변해야 사는’ 일대 기로에 섰습니다. ‘명품까톡’에선 글로벌 력셔리 업계의 뉴스와 그 이면을 까서 볼 때 보이는 의미를 짚어봅니다.    

[명품까톡](2)

사진 언스플래쉬

사진 언스플래쉬

캡슐 컬렉션(Capsule Collection). 만약 패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최근 업계 뉴스를 접했다면 가장 많이 들어봤을 말입니다. 지난 6일 영국 패션 브랜드 멀버리가 창립 50주년 ‘타이포그래피 캡슐 컬렉션’을 내놨고, 앞서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 캡슐 컬렉션, 불가리는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와 함께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최근엔 국내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가 구찌와 함께 ‘카이×구찌 캡슐 컬렉션’을 공개하기도 했죠.

‘카이x구찌 캡슐 컬렉션’(왼쪽)과 멀버리의 창립 50주년 ‘타이포그래피 캡슐 컬렉션’. 사진 각사

‘카이x구찌 캡슐 컬렉션’(왼쪽)과 멀버리의 창립 50주년 ‘타이포그래피 캡슐 컬렉션’. 사진 각사

‘작고 가벼운’ 캡슐 

도대체 캡슐 컬렉션이 뭐길래 이렇게 넘쳐나는 걸까요. 캡슐의 사전적 의미는 누구나 떠올리듯 약품을 담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입니다. 영화에서 우주선에 탄 사람들이 수면상태에 들어가 있는 비좁은 상자도 캡슐이죠. 패션에서 캡슐 컬렉션은 제품 종류를 줄여 작은 단위로 그때그때 발표하는 의상·제품들이란 뜻입니다.

1985년 도나 카란이 내놓은 7가지 핵심 컬렉션(왼쪽)과 2004년 칼 라거펠트와 H&M이 협업한 캡슐 컬렉션.중앙포토

1985년 도나 카란이 내놓은 7가지 핵심 컬렉션(왼쪽)과 2004년 칼 라거펠트와 H&M이 협업한 캡슐 컬렉션.중앙포토

통상 명품 브랜드들은 봄·여름(SS), 가을·겨울(FW) 두 차례 컬렉션을 발표하는 게 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유행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할 필요가 있었기에 이와 별도로 작은 제품들을 선보이는 경우가 있었죠. 그러다 1985년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도나 카란(유명 브랜드 DKNY는 도나카란뉴욕이란 뜻입니다)이 7벌의 옷으로 구성된 컬렉션을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알렉산더 왕이 H&M과 캡슐 컬렉션을 내놓으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한 개념이 됐습니다.

이렇게 캡슐 컬렉션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코로나19 이후엔 아예 업계의 대세로 자리잡았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기존 SS·FW 정규 컬렉션을 넘어 대세를 이루고 더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업계 환경과 캡슐 컬렉션이 갖는 장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장점이 극대화됐으니까요.

코로나와 의외의 궁합 자랑

첫째, 뭐니뭐니해도 비용절감입니다. 제품 종류를 줄이면 아무래도 재료를 비롯한 각종 생산비와 인력·유통비가 줄어들겠죠. 실제로 과거엔 형편이 안 되는 디자이너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상황에 매치해서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스타일의 옷 몇 벌을 만들어 캡슐 컬렉션을 내기도 했답니다.
드러내진 않아도 비용절감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명품 브랜드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특히 제품 기획·개발을 위한 해외 출장 등 이동이 제한되고 생산라인 중단 등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 비즈니스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클로에·조르지오아르마니 등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컬렉션 규모를 30% 이상 줄인 곳들이 많습니다.

폐기 직물과 산업용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나일론 섬유로 만든 '버버리 에디트' 컬렉션. 사진 버버리

폐기 직물과 산업용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나일론 섬유로 만든 '버버리 에디트' 컬렉션. 사진 버버리

둘째, 비용절감은 최근 세계적인 대세인 ‘친환경’ 이슈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에르메스나 샤넬같은 초고가 명품 브랜드들이 브랜드 몸값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를 태워버린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씁쓸해하죠. 하지만 제품 수를 줄이면 옷이나 가방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는 물론 재고가 줄고 폐기물도 줄일 수 있어 아무래도 환경에 도움이 됩니다.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동안 잘 팔리지 않던 제품들을 없앴다. 컬렉션을 기존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라며 “이는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오늘날 너무 많이 생산하는 건 범죄”라고 말합니다.

‘엑기스’만 전달하겠다 

셋째, 패션 브랜드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핵심 제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여러 종류의 제품을 만드는 대신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만 뽑아 반영할 수 있다는 얘기죠. 이럴 경우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패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이러면 도·소매업체나 소비자도 편합니다. 브랜드가 미술 전시회의 큐레이터처럼 ‘엑기스’만 소개하기 때문에 ‘요즘 뭐가 진짜 인기지?’ ‘딱 하나 사고싶은 데 뭘 사지?’같은 선택의 고민과 혼란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넷째, 핵심 제품 소량 공개는 브랜드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전 세계 패션 생산량의 상당부분은 결국 암시장이나 아웃렛에 버려진다. 이는 우리 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대신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집중할 수 있는 컬렉션을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선 자신의 철학을 담아 ‘응축된 답안지’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창작에 대한 고민이 심오해지고 한 차원 높은 창의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적게 만들수록 수익은 UP! 

루이비통(왼쪽)과 에르메스 등 명품 대표 브랜드들도 온라인 공식 쇼핑몰을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사진 쇼핑몰 화면 캡처

루이비통(왼쪽)과 에르메스 등 명품 대표 브랜드들도 온라인 공식 쇼핑몰을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사진 쇼핑몰 화면 캡처

다섯째, 적게 만든다고 수익이 적은 건 아닙니다. 캡슐 컬렉션은 ‘한정판’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 제품들이 수집욕구를 자극해 대박을 칠 경우 생산비를 적게 들이고 재고를 줄이면서도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꿩 먹고 알 먹고죠. 또 인기있는 예술가나 디자이너, 연예인, 디즈니같은 다른 분야 브랜드들과 협업(콜라보레이션)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트렌드와 수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캡슐 컬렉션은 ‘온라인 세상’에 유리합니다. 당장 온라인상에서 전 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주문을 받고 즉각적으로 제품을 발송하려면 원활한 주문·생산·재고관리가 필수겠죠. 당연히 대규모 정규 컬렉션보다 몸이 가벼운 캡슐 컬렉션이 유리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사진이나 라이브 커머스 등으로 제품을 보고 사야 하는데 종류가 너무 많은 것보다 몇 가지 인상적인 제품들로 한정시키는 게 편합니다.
마케팅 측면에선 화제가 되는 협업을 통해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좋고, 적은 수의 제품에 많은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명품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판매 강화에 나선 만큼 캡슐 컬렉션의 위세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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