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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징병제 노르웨이 "최고의 여성 원한다, 안경 써도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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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재밌는 이슈”라고 했던 ‘여성징병제’를 정치권에서도 실제 가능한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남성만으로 필요 병력을 충원하기 어려워졌다는 현실적 이유가 크다. 양성이 같은 의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요인이다.

해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노르웨이는 어떻게 여성징병제를 2016년 시행할 수 있었을까. 사실 여성징병제 논의와 관련 노르웨이 내부 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양심적 병역 거부가 쉽다는 정도다. 프랑크 브룬틀란드 스테데르(Frank Brundtland Steder) 노르웨이 국방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지난달 29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국방 선진화 부문에서 2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 여성징병제 논의에도 깊숙이 개입한 국방 전문가다.

노르웨이에서 여성징병제 논의는 어떻게 시작됐나
노르웨이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4년부터 남성에 대한 징병을 시작했다. 복무 기간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6~18개월이었다. 지금은 법적으로 징병 대상자는 병사 19~44세, 장교 19~55세이고, 복무 기간은 19개월이다. 아주 오랜 시간 남성만 대상으로 징병을 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 차별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회적 의무나 권리에 있어 남녀를 다르게 대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징병제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대하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기로 한 이유는 뭔가
처음엔 두 가지를 놓고 논의했다. 남녀 모두를 징병하거나, 징병제를 폐지하거나. 둘 다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이었다. 여성들이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면, 반드시 동등한 의무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원칙이었다.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물론 회의론도 있고 논쟁도 있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측에서는 ‘여성은 출산을 한다. 출산이 여성에겐 징병과 다름없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측은 ‘생물학적인 건 징병제와 관련이 없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다르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반박했다. 결국 체계적으로 진행된 정치적 논쟁에서 결론을 내렸다. ‘노르웨이는 남성과 여성을 권리와 의무 모두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여성징병제를 도입할 기반이 마련됐다. 동시에 군대의 변화도 영향을 줬다. 노르웨이 군은 전쟁을 대비해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시키는 모델에서 탈피해 즉시 전력을 지향하면서 파병이 쉬운 기동적 모델로 변화했다. 이 때문에 예전보다 적은 병력이 필요했고, 높은 수준의 인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점도 여성징병제 도입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여성들의 반대는 없었나
논의 초기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부정적인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들은 ‘인생 계획을 다 짜놨는데, 왜 하필 지금 나를 징병하냐’고 했다. 이에 대한 국방부의 대답은 이렇다.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있다. 병역은 의무다. 국방의 의무를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거부할 수 없다. 너는 공부도 잘하고 신체 능력도 좋고, 사는 지역도 맞고, 조건도 좋다. 그래서 징병된 것이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벌된다.’
노르웨이 여성들도 남성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군에 입대한다. 노르웨이 군은 남녀 공동 내무반을 운영한다. 사진 노르웨이 군

노르웨이 여성들도 남성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군에 입대한다. 노르웨이 군은 남녀 공동 내무반을 운영한다. 사진 노르웨이 군

군대 입장에서 여성을 받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군대로서는 오직 최고의 병사만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최고의 남자’뿐 아니라 ‘최고의 여자’도 원한다는 말이다. 여성에 대한 징병 할당(쿼터)은 두지 않고 입대 전 테스트를 얼마나 잘 수행했냐만 따졌다. 현재 징병되는 사람 (성별) 비율은 대체로 여성이 30%, 남성이 70%다.
노르웨이에서 징병은 어떻게 진행되나
국가적으로 거대한 선별 시스템이 있다. 모든 17세 청소년은 노르웨이 군으로부터 전자 설문조사를 받는다. 사회생활ㆍ건강ㆍ신체조건ㆍ동기부여ㆍ흥미분야 등 문항 55개에 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선발된 3분의 1 정도 인원만 2단계로 넘어간다. 이후 언어 테스트, 체력 테스트, 건강 검진을 받고 면접까지 한다. 전체 코호트(대상 연령 집단) 중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10~15%만 군복을 입을 자격을 얻는다. 그러니까 병역은 의무이지만 동시에 자격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안경을 쓰는 사람은 징병되지 않는다. 글루텐 알레르기 같은 것도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에게 군 경험은 교육의 기회이자, 귀중한 경험이고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여겨진다.
노르웨이 군은 스스로를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갖춘 '회사'라고 자부한다. 병과별 자체 학사 학위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징병으로 입대한 이들에게도 대학·대학원 등 상급 교육기관 지원 시 적용되는 가산점을 준다. 사진 노르웨이 군

노르웨이 군은 스스로를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갖춘 '회사'라고 자부한다. 병과별 자체 학사 학위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징병으로 입대한 이들에게도 대학·대학원 등 상급 교육기관 지원 시 적용되는 가산점을 준다. 사진 노르웨이 군

징병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은 어떻게 되나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웃음). 대체 복무를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징병 대상자로 등록이 돼 있긴 하다. 44세가 되면 거기서도 해제된다. 징병되려면 이런 가능성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군에서 핵물리학자가 필요하면, 그런 사람을 징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군대 갔다 오면 혜택이 있나
가산점을 받는다. 대학, 대학원 진학할 때 혜택이 있다. 취업할 때는 물리적 혜택은 없지만, 기업들은 군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유리하게 작용한다. 군대를 다녀오면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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