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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쒀서 테슬라만 줄라…올해도 지자체 보조금 ‘싹쓸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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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02면

전기차 지원금 논란

현대 아이오닉5

현대 아이오닉5

경기도에 사는 심지혜(42)씨는 최근 미국의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3을 구매했다. 계약에서 차량 인도까지 한 달이 조금 넘게 걸렸고, 당연히 전기차 보조금도 받았다. 그런데, 애초 심씨가 구매하려던 전기차는 모델3이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였다. 심씨는 현대차가 아이오닉5을 공개하고 사전예약 접수를 시작한 첫날인 2월 25일 사전예약을 했다. 심씨는 “(아이오닉5의)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이 마음에 들어 전기차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지자체 보조금 공고가 나오기 전이어서 당연히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오닉5의 양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현대차는 당초 3월 양산을 목표로 2월 사전예약을 받았다.

테슬라, 1분기 50% 넘게 차지 #현대·기아 전기차 출시 지연돼 #‘선착순’ 지급 탓 조기 소진 우려 #환경부, 보조금 늘리려 추경 강구 #특정 업체에 쏠림 막게 재정비해야

하지만 대리점에 문의해도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노사 간 맨아워(숙련자가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 분량) 조정으로 양산이 지체된 탓이다. 여기에 반도체 난(亂)이 덮쳤다. 차량용 반도체와 구동 모터 납품 문제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4월 목표 대수는 1만 대에서 2600대로 확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전기차 보조금이었다. 아이오닉5의 양산이 늦어지면서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심씨는 “지자체의 보조금 지원 대수가 적은 지역이어서 혹시 몰라 모델3도 계약을 했다”며 “먼저 나오는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모델3이 최근 인도돼 아이오닉5는 취소했다”고 말했다.

4월 말 올해 보조금 절반 가까이 소진

기아 EV6

기아 EV6

‘사전예약 신기록’을 다시 쓴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의 출고가 시작되면서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아이오닉5는 사전예약 접수 첫날에만 2만3760대가 계약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사전예약 종전 최고 기록(그랜저 부분변경 모델, 1만7294대)을 가뿐히 넘어섰지만, 보조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몰렸다. 국고·지자체 보조금이 합산돼 지급되는 전기차 보조금은 미리 책정한 1년 치 예산을 전부 사용할 때까지만 운영한다. 문제는 지자체 보조금이다. 지자체 보조금을 모두 소진하면 이후 차량을 출고한 소비자는 지자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지난해에도 국고 보조금을 소진하기 전에 지자체 보조금이 고갈돼 전기차 구매를 예약했던 소비자를 올해로 이월하기도 했다.

보조금은 전기차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아이오닉5는 최대 1900만원(경상북도 기준)가량의 국고·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아이오닉5 롱레인지 익스클루시브 모델 가격(4980만원)의 38%에 해당한다. 적지 않은 금액인 만큼 소비자나 전기차 업체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테슬라가 올해 초 모델3의 가격을 500만원가량 인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6000만원이 넘는 전기차의 보조금을 50% 삭감하자 6000만원 아래로 가격을 낮춘 것이다.

그런데 보조금은 이미 절반 가까이가 소진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5월 3일 기준 서울은 2534대(이하 법인·기관 물량을 제외한 전기 승용차 일반 물량 기준) 중 1829대가 접수됐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여름께 서울시의 보조금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세종시는 150대 중 128대가 접수됐고, 수원·하남시는 이미 공고 물량(각각 190대, 94대)을 초과한 213대, 127대가 접수됐다. 출시가 지연된 아이오닉5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아차의 전기차 EV6는 7월에나 출시된다.

보조금은 테슬라가 쓸어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6220대의 전기차(승용차 기준)가 팔렸는데, 테슬라가 절반이 넘는 3231대에 이른다. 테슬라는 특히 아이오닉5 등 현대·기아차의 E-GMP(전기차 전용 플랫폼) 전기차가 인기를 끌자 지난달 초 아이오닉5·EV6 경쟁 모델인 모델3·모델Y 1만여 대를 배에 실어 보냈다. 보조금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이 차는 5월 국내에 들어온다. 업계에선 이 차가 들어오면 보조금이 급속히 사라질 것으로 우려한다. 테슬라는 지난해에도 국내에서 1만1826대를 팔아 보조금 싹쓸이 논란을 낳았다.

미, 20만대 초과 업체엔 보조금 안 줘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보조금 쏠림 논란이 일자 환경부는 서울·부산시 등 보조금 소진이 빠른 지자체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책정해 보조금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전기차 수요 확대에 맞춰 지방비 확대 등을 협의해 최대한 국고 보조금 예산을 전액 집행하겠다는 것이 환경부의 의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추경은 미봉책일 뿐 전반적으로 보조금 지급 체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는 올해 초 이미 한차례 보조금 지원 체제를 개편한 바 있다. 테슬라의 보조금 싹쓸이 논란이 인 직후다. 올해부터 6000만원 이상 차량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액을 50%로 삭감하고, 9000만원이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테슬라의 일부 모델이나, 포르쉐 등 고가 수입차를 겨냥한 것이다. 또 에너지 효율성, 주행거리, 중소기업·소상공인 해당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별로 제각각인 지원대수, 지원금을 통일하고 ‘선착순’ 지급 방식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선착순이 아닌 ‘분기별 할당’으로 바꿔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컨대 부산이면 부산의 공기 질 향상을 위해 부산시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어서 중앙정부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조금은 환경부가 총괄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보조금과 지원대수를 통일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자체 보조금을 세액 감면 형태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조금 형태를 중앙정부는 지금처럼 지급하되, 지자체 보조금은 취득세나 자동차세를 감면하는 식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렇게 하면 지자체의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지역별로 제각각인 보조금 문제나 선착순 지급 방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처럼 정책적 차원의 근본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특정 업체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누적 전기차 판매량이 20만 대를 초과한 업체(테슬라·제너럴모터스)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양재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거주지나 신청 시기에 따라 보조금 수령 여부가 갈리지 않도록 보조금 제도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별 전기차 수요에 따라 각 지자체의 보조금 예산을 지역을 넘어 유동성 있게 운영하는 등의 방식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프랑스 보조금 축소, 독일은 2025년까지만 주기로

전기차 보조금은 언제까지 줘야 할까.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보조금을 주고 있는 세계 주요 나라가 이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선 보조금을 주고서라도 전기차 보급을 늘려야 하지만, 적지 않은 재원이 들어가는 만큼 마냥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얼마나 어떻게 줘야 하느냐 문제와는 또다른 문제다. 전기차 배터리 성능 향상으로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최근 이 문제로 골몰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다수의 유럽 정부가 올해 연말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내년부터 보조금을 확 줄이기로 했다. 현재 4만5000유로(약 6100만원) 미만의 전기차에는 6000유로(약 81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내년에는 4000유로(약 540만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독일은 2025년까지만 보조금을 주기로 했고, 중국은 지난해 보조금 규모를 10% 줄인 데 이어 올해 20%, 내년에는 30% 줄인다.

이들 나라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미국도 자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기차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전기가 부족하고, 판매가격도 아직은 비슷한 수준의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이 때문에 보조금을 없애면 전기차 성장세가 확 꺾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에선 지원금이 줄어들자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나라가 보조금을 없애면 전기차 판매량도 급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차 가격을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되지만, 자동차업계는 10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현금성 지원은 줄여나가되,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전기차 업체 리더들은 정부가 전기차 충전소 같은 인프라 개발과 배터리 공장 건설 지원,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과세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가격을 1000만원 이상 인하해 내연기관차 수준의 경제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때까지는 보조금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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