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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3000만원·1억"…곳간 비는데, 나오는 현금살포 정책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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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현금 살포’성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2030 지지층 복원을 위한 아이디어라지만, 나랏빚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곳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세계 여행비 1000만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 제대 시 3000만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억원 통장’ 등을 제안했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경기도청에서 고졸 취업지원 업무협약을 맺으며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것과 같은 기간에 세계일주를 다닌 것하고, 어떤 것이 더 인생과 역량계발에 도움이 되겠나”며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이 전 대표는 5일 유튜브 ‘이낙연TV’ 대담에서 군 복무를 한 남성들에게 ‘군 가산점’ 대신 현금성 지원을 하자고 제안하며 “징집된 남성들에게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원 장만해서 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광주대 강연에서 “미래씨앗통장 제도를 만들어 모든 신생아가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부모 찬스 없이도 자립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20년 적립형으로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설계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청년 지원 방안은 아이디어 차원의 의견제시이거나 참여한 행사의 성격 등을 감안한 정치성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잠룡’으로 꼽히는 이들이 거론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집행하려면 얼마의 예산이 들고,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에 대한 방안이 빠져 있어서다. 실행 가능성도 적은데 이를 밝힌 것이라면 자칫 청년들에게 ‘희망고문’을 또 하나 추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이런 대규모 재정 지출을 부르는 정책에는 그만큼 대규모 부채가 뒤따른다. 늘어난 지출만큼 빚을 내 메워야 해서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어가고 있다.

국가채무는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 원에서 올해 965조 원으로 급증한다. 같은 기간 국가 채무 비율은 36%에서 48.2%로 뛴다. 2022년에 국가 채무 비율은 52.3%, 2024년에는 59.7%로 오른다. 이들 잠룡 3인방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는 다음 정부에선 ‘나랏빚 1000조 원, 국가 채무 비율 50% 시대’로 출발하는 셈이다.

여야 막론하고 '퍼주기 정책' 우려 

야권에서 “나라 곳간은 비어가는데, 다투어 잔돈 몇 푼으로 청년을 유혹하는데 열심”(홍준표 무소속 의원), “이제 악성 포퓰리즘과 전쟁을 해야 한다”(유승민 국민의힘 의원), “어느 순간에 허경영씨를 초월할지 궁금하다”(이준석전 최고의원) 등의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 내부에서도 선거용 퍼주기 경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있는 재정을 마구 나눠주고 퍼준다고 생각하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광재 민주당 의원 역시 “청년 해결책이 ‘현금’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라고 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선거에서 2030세대가 여당을 외면한 건  고용절벽ㆍ집값 폭등 같은 지난 4년간의 국정 실패 때문”이라며 “이미 국민은 각종 현금 살포성 정책이 미래에 세금 인상 등으로 돌아올 청구서란 점을 깨달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이어 “이젠 포퓰리즘 정책 경쟁보다는, 지난 정책에 대한 반성과 과감한 정책 기조 전환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장의 인기를 위한 반시장적인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우려했다. 김 원장은 “프랑스의 혁명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통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우려된다. 서민을 위해 우윳값을 강제로 내렸으나, 결국 공급이 부족해 귀족만 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펼쳐 잘된 나라는 없다”며 “모두 함께 못살게 됐다”고 꼬집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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