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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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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신약을 먹었더니 (치료가) 대단히 잘됐다.”

지난달 27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한 말이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게 작년 9월이었는데, 그 새 약을 먹고 좋아졌다는 얘기다.

작년 말 일본 경제계의 한 원로는 기자에게 아베와 찍은 사진 한장을 보여줬다.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베는 골프채를 쥔 채 쪼그리고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는 설사로 괴로워한다는 궤양성 대장염을 앓은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있다고? 이 원로 인사는 “아베는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아베의 정치 활동이 날로 활발해지고 있다. 각종 정치 행사는 물론이고 유튜브나 방송에도 출연해 발언 횟수를 늘리고 있다. 개헌추진본부 명예 고문, 도쿄올림픽 명예 최고고문, 자민당 ‘보수단결의 모임’ 고문 등 맡고 있는 직책도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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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는 자민당 내 당선 3회 미만의 젊은 의원들을 상대로 ‘선거에서 이기는 법’에 대해 강연도 시작했다고 한다. 아베는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119명의 신인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바 있다. 아베의 우산 아래서 3회 연속 당선에 성공한 ‘아베 키즈’들은 어려운 선거를 해 본 적이 없다. 이들에겐 재임 중 6번의 선거를 모두 압승으로 이끈 아베가 ‘1타 강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반면 스가 총리에겐 그런 ‘오라(Aura)’가 없다. 4월 재·보선에서 ‘자민당 왕국’이라 불리는 히로시마에서 조차 참패하자, 스가 지지모임에서도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 여론도 차갑게 식었다. 국민 47%가 스가 정권을 지지하지만, 다음에도 스가가 총리를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고작 4% 뿐이다. (4월 26일 닛케이 여론조사) 코로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는데, IOC에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불만이다. 보수 정권에 가장 비판적인 도쿄신문조차 “1년전 아베 총리는 IOC를 설득해 ‘올림픽 1년 연기’ 결정을 이끌어냈다. 어쩌다 우리가 아베 시절을 그리워하게 됐나”라고 한탄하는 상황이다.

아베의 ‘재재등판설’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당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로 복귀하면, 아베가 다시 일본의 총리가 된다는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아베는 “다음 총재 선거에서 당연히 스가 총리가 재선되어야 할 것”이라며, 자신의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런데 스가로 교통정리까지 해주면서 다시 한번 아베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꼴이 됐다. 설사 ‘재재등판’이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아베의 그늘은 앞으로도 길고 짙어질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