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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간 제주에 헌신한 아일랜드 신부의 농가주택, 문화재 된다

중앙일보

입력

문화재청은 6일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조성했던 '제주 이시돌 목장'의 테시폰식 주택 2채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림읍 금악리 135번지에 위치한 테시폰식 주택.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6일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조성했던 '제주 이시돌 목장'의 테시폰식 주택 2채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림읍 금악리 135번지에 위치한 테시폰식 주택. [사진 문화재청]

6‧25 전쟁의 포연과 4‧3 항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4년 제주도에 발을 디딘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가 있었다. 당시 26세였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1928~2018)다. 1953년 한국에 온 그는 소록도 등 다른 부임지를 거쳐 제주에서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척박한 땅에서 주민들을 도와 한라산 중산간마을을 개간하고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귀국했다가 1961년 되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양돈‧목축업을 시작했다. 목장의 이름은 이시돌. 신의 가호를 받은 스페인 농부이름을 땄다.

61년 세운 이시돌목장 테시폰식 주택 2채 #"제주의 생활사 보여줘" 등록문화재 예고

목장을 관리할 집과 창고를 지으려니 가진 자재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도입한 게 ‘테시폰식 주택’이다. 테시폰이란 이라크 고대 도시 유적인 테시폰(Ctesiphon)의 아치 구조물의 형태를 참고하여 창안해 낸 건축 유형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힘이 아치형 구조체에서 나온다. 제주 지역의 테시폰은 아치 모양으로 목재 틀을 세우고 그 사이에 가마니를 펼쳐 깐 다음 시멘트 모르타르를 덧발라 골격을 만들고 내부에 블록으로 벽을 쌓는 형태다. 제주에선 1960∼1970년대에 주택과 창고, 돼지우리 등으로 사용하느라 보급됐다.

문화재청은 6일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조성했던 '제주 이시돌 목장'의 테시폰식 주택 2채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제주 한림읍 금악리 77-4번지에 위치한 테시폰식 주택.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6일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조성했던 '제주 이시돌 목장'의 테시폰식 주택 2채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제주 한림읍 금악리 77-4번지에 위치한 테시폰식 주택. [사진 문화재청]

제주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는 등 한국에서 60년 넘게 선교와 사회사업을 펼쳤던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의 2017년 모습. 사후에 명예 국민증이 헌정된 첫 주인공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는 등 한국에서 60년 넘게 선교와 사회사업을 펼쳤던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의 2017년 모습. 사후에 명예 국민증이 헌정된 첫 주인공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4년간 제주민과 함께 하며 목장, 병원, 양로원 등을 일궜던 맥그린치 신부의 유산, 테시폰식 주택 2채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6일 제주 이시돌 목장의 주택 2채가 “근대기 집단 주택의 한 흐름과, 제주 지역의 목장 개척사, 생활사, 주택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소중한 근대건축유산”이라며 등록문화재로 예고했다. 소재지는 각각 한림읍 금악리 77-4번지와 135번지다. 이국적인 외관 때문에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증샷 성지’로 자주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오늘날 다른 지역의 테시폰식 건축은 모두 소실됐고 제주 지역에서만 24채가 남아있는데 이 중에서도 61년 건축된 이시돌 목장의 주택 2채가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건물 규모는 30∼40㎡이다. 제주 축산‧목축업의 기반이 됐던 성이시돌 목장은 요즘은 양로원, 성당, 수녀원 등이 밀집해 천주교 성지로 더 알려져 있다. ‘푸른 눈의 돼지 신부’로 불렸던 맥그린치 신부는 1973년 명예 제주도민이 돼 ‘임피제’라는 한국명을 썼고 2018년 별세했다. 그해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명예국민증을 처음으로 사후 헌정했다.

문화재청이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동학농민군 편지'. 양반가 자제였던 유광화(1858~1894)가 목숨을 잃기 직전인 1894년 11월께 동생 광팔에게 보낸 서한이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동학농민군 편지'. 양반가 자제였던 유광화(1858~1894)가 목숨을 잃기 직전인 1894년 11월께 동생 광팔에게 보낸 서한이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날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보유한 ‘동학농민군 편지’도 등록문화재로 예고했다. 편지는 양반가 자제로서 동학농민군 지도부에서 활동한 유광화(1858∼1894)가 목숨을 잃기 직전인 1894년 11월께 동생 광팔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한문으로 쓴 편지에서 왜군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싸우는 데 필요한 자금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동학농민혁명이 농민뿐만 아니라 양반층도 참여한 범민족적 혁명이었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고 농민군이 전투 과정에서 직접 작성한 희귀한 편지 원본”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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