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세균 "청년에 목돈" 김두관 "내 공약"···'기본자산' 원조 싸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부모찬스 없이도 자립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설계 중이다.”

기본소득 이어 기본자산 논쟁 #김두관 “정세균 내 공약 베꼈다” #야당 “허경영 능가할 사탕발림”

대선 주자로 나선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광주 남구 광주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의 새로운 역할’ 강연에서 첫 공약으로 ‘미래씨앗통장’ 제도를 띄우면서 한 말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그러자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이튿날 “정 전 총리의 공약은 내 대표적인 공약 ‘국민기본자산제’에서 금액만 약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연 30만명의 신생아에 2000만원씩을 배당해 성인이 될 때 목돈으로 받게 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 전 총리가 가져다 썼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기본자산제는 지난해 10월부터 내가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누가 주창자인지는 밝혀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정 전 총리 측은 김 의원이 아니라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에서 착안했다는 입장이다. 책 ‘21세기 자본’으로 저명한 피케티는 최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25살이 되는 모든 청년에게 1억6000만원을 기본자산으로 주자”고 제안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김두관의 국민 기본자산제 제안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김두관의 국민 기본자산제 제안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정 전 총리와 김 의원이 원조(元祖) 논쟁을 벌이고 있는 기본자산제는 성인이 되면 부모 대신 사회가 목돈을 마련해 주자는 ‘사회적 상속’ 개념이다. 고착화된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소득 보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목돈으로 빈곤을 탈출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들이 기본자산제를 정책 브랜드로 선점하려는 건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제의 대항마로 세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 실행 계획은 3단계(단기,중기,장기)로 나뉘는데, 이중 단기 계획인 국민 1인당 25만원을 연 2회 지급하기 위해서만 26조원이 필요하다. 기본자산제를 주장하는 측에선 "기본소득제보다 재원 마련이 수월하다"고 주장한다. 김두관 의원은 "연 30만명의 출생아에 2000만원씩 지급할 때 연 6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이는 정부 예산 558조원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 기존 복지를 대체하거나 경제에 악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는 “20년 적립형 통장으로 사회 초년생에게 1억원을 마련해줄 수 있다”며 “재원 대책까지 완결해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은 다양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이 앞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발판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익명을 요청한 기재부 차관 출신의 한 경제학자는 “특히 정 전 총리의 경우 재원 마련 대책도 없이 1억 통장 공약을 먼저 꺼낸 것은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며 “이미 있는 복지 정책과의 연계는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도 앞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기본 시리즈 정책으로 경쟁하는 여권에 대항해, 보수 진영에선 고소득층에게 부유세를 걷어서 저소득층에 선별적으로 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보궐선거에서 연 소득이 일정 금액 이하인 가구에 지원금을 주는 ‘안심소득’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학 안 가면 세계여행비 1000만원”, 국민의힘 “허경영이냐”

이재명 지사가 지난 4일 “4년간 대학에 안 가는 대신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 것을 두고도 논쟁이 불붙었다. 이 지사는 “4년간 대학을 다닌 것과 4년간 세계일주를 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인생과 역량 개발에 도움이 될까”라며 “각자 원하는 바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5일 “대학 안 가는 사람에게 세계여행용 1000만원을 준다는 선정적인 낚시를 할 때가 아니다”며 “대학생이든 아니든 (청년이라면) 세계여행 계획을 제안하고, 장학재단 등 민간에서 이를 지원하는 방법이 더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이제 사탕발림 공약들의 단위가 기본이 1000만원대”라며 “어느 순간에 허경영씨를 초월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박기녕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이 지사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청년을 현혹하지 말라”며 “허경영씨를 존경한다더니 정책마저도 허씨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인가”라고 논평을 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