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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 이해찬 쟁탈전? 이낙연 90분 독대, 이재명은 잦은 만남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지난해 7월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한 중식당에서 ‘상왕’ 이해찬 전 대표를 마주했다. 배석자 없는독대였다. 두 사람은 각종 현안에 대해 1시간 30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대화 내용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당내에선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출구를 찾지 못하던 이낙연 전 대표가 향후 행보를 자문했을 것”(친문 초선)이라는 등의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 인사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든 건 두 사람의 독대 시점이다. 오는 12일 출범하는 전국적 이재명 경기 지사 지지 조직의 이름이 ‘민주평화광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해찬 전 대표의 이 지사 지원설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민주평화광장’의 ‘광장’은 이해찬 전 대표가 2008년에 만든 연구재단 ‘광장’에서 따왔다. 조직을 나서 이끄는 사람 역시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까운 조정식 의원(5선)이다. “이 지사는 최근 이 전 대표를 자주 만나며 정치적 조언을 구하고 있다”게 이 지사 측의 설명이다.

경선 두 달 앞…존재감 커진 ‘상왕’

대선 후보 경선 개시(7월)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해찬 전 대표와 여권 대선주자들 사이의 거리에 대한 당내 관심이 커지는 건 이해찬 전 대표가 가진 상징성과 정권 창출의 경험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여전히 가까운 사이지만 지지율 하락에 따라 당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이낙연 전 대표나 극성 문 대통령 지지층의 비토가 여전한 이 지사 입장에선 이해찬 전 대표와의 교감 또는 제휴가 숙제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야당(옛 민주당) 인사였던 이낙연 전 대표나 한때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반노(反盧)의 길을 걸었던 이 지사 입장에선 정통성 보완을 위해서도 이해찬 전 대표의 존재감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이해찬 전 대표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9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이해찬 전 대표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이해찬 전 대표의 호감도는 낮지만 진영 내부의 상징성과 세번의 정권 창출의 경험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며 “그의 움직임이 이기는 길로 읽힐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지난해 11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했을 때도 이해찬 전 대표와 독대를 청했다”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이해찬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실력자라는 건 여전히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5·2 전당대회에서도 송영길 대표보다 인지도에 열세였던 홍영표·우원식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하며 ‘이해찬 마케팅’을 폈다. 우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중 당원·대의원에게 “30여년 간 저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고 민생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우 의원을 응원한다”는 이 전 대표의 메시지를 첨부해 전달했다.

‘김종인 vs 이해찬’ 킹메이커 대전되나

이 전 대표는 퇴임 기자간담회(지난해 8월 28일)에서 “현역을 떠나 당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외부 활동은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을 맡아 서울 여의도 사무실과 국회 도서관에서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찾아오는 인사들에게 조언하는 정도였다.

지난해 1월 열린 민주당 신년인사회에서 이해찬 전 대표(왼쪽)에게 이재명 경기지사가 다가가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해 1월 열린 민주당 신년인사회에서 이해찬 전 대표(왼쪽)에게 이재명 경기지사가 다가가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그랬던 그가 침묵을 깨고 4·7 재·보궐선거에선 전면에 나섰던 건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 여론조사상으로 (격차가) 좁혀지는 추이를 보인다”(4월 1일)는 발언이 논란을 샀고 결국엔 서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의 행정처분까지 받았다. 한 청와대 출신 의원은 “공개 발언에선 패착이 적잖았지만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대선에선 후보간 매력 대결이나 당 대 당의 화력 대결보다 이해찬 전 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지략 대결이 더 볼만할 것”(익명을 원한 정치컨설턴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다. 

지난해 6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왼쪽)가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찾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6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왼쪽)가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찾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번 대선은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에서 맞대결(당시 이해찬 전 대표 승리)한 이후 33년째 악연을 이어온 두 사람의 마지막 승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대 총선에선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이던 김 전 위원장에 컷오프(경선배제)당한 이해찬 전 대표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했다.

선거 총책임자로 맞선 21대 총선에선 이해찬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에 180석 대 103석의 압승을 거뒀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결국 양당이 참신한 리더십도 새로운 노선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다음 대선의 중요한 테마임에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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