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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의료기부 1조 뒤엔, 삼성병원 1층 소아암 환자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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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에서 둘째)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부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지난 2010년 2월 4일 열린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음악회 장소에 입장하고 있다. [중앙토포]

고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에서 둘째)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부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지난 2010년 2월 4일 열린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음악회 장소에 입장하고 있다. [중앙토포]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재산 상속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달 30일 고 이 회장의 유가족 측은 세무당국에 12조원대 상속세를 신고했다. 이날 유가족은 5년간 6차례로 나눠 상속세를 내겠다는 연부연납을 신청했고, 1회차 분납액으로 2조원대 상속세를 납부했다.

고 이 회장이 남긴 재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주식(시장 가치로 18조9633억원)도 이날 오후 공시를 통해 공개됐다. 삼성전자(4.18%)와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중에서 삼성생명을 제외한 주식은 각각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나뉘었다.

이재용 등 삼성 유가족, ‘절묘한 승계’

고인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이 9분의 3(33.33%)을, 세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9분의 2(22.22%)를 받았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만 고인의 지분 절반(10.44%)을 이 부회장이 물려받았다. 나머지는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이 각각 6.92%, 3.46%를 상속 받았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물산 주식 17.33%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이번에 법정비율(9분의 2)대로 711만 주를 더해 3388만여 주(17.97%)를 보유하게 됐다.

여기에 고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절반을 상속받으면서 삼성생명 지분율이 0.06%에 10.44%로 확 늘었다.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 주주이자 삼성물산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 이후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생명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 지배력이 탄탄해졌다”고 설명했다.

유가족, 문병 다니며 어린이환자 자주 접해  

홍 전 관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양보했다. 다만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1.39%)을 법정비율대로 상속받으면서 지분율이 2.3%로 늘어나 개인 최대 주주가 됐다. 재계에선 “홍 전 관장이 (세금 부담이 가장 큰 삼성전자의 상속을 법정비율대로 나눔으로써) 상속세 부담도 나누면서, 그룹 내 입지를 공고히 해 언제든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구조를 도울 수 있는 절묘한 지분 정리였다”고 풀이했다.

의료공헌 현금 1조…‘숨은 사연’ 있었다 

앞서 지난달 28일 유가족은 상속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공익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사회 환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재계의 예상과 달리 의료계에 현금 1조원을 지원하고, 고 이 회장이 생전에 수집했던 감정가 3조원대 미술품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7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5000억원),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감염병 연구‧개발(2000억원)에 투입된다. 이와 함께 10년간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린 어린이 환자를 위해 3000억원을 내놨다. 10년간 1만7000여 명의 어린이 환자가 도움 받을 수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그룹 지배구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재계에선 삼성 일가의 사회 환원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법정 공방에 시달리고 있는 이 부회장 등 유가족이 상속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가급적 어떤 논란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 부회장이 수 차례 약속한 ‘준법’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속내가 담겼다는 평이다.

특히 유가족이 의료계에 현금 기부를 결정한 데는 고 이 회장의 오랜 투병 생활이 영향을 미쳤다. 고 이 회장은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쓰러진 후 6년5개월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했다.

로비에서 어린이 환자 볼 때 마음 아파 해

고 이 회장이 머문 VIP 병실이 있는 삼성병원 20층은 1층에서 바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유가족은 문병을 위해 수시로 병원을 찾았는데, 1층 로비에서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채 해맑게 웃는 어린이 환자를 마주칠 때마다 마음 아파했다고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삼성 관계자는 “(유가족이) 한 번은 ‘어린이 환자가 왜 이렇게 많냐’고 질문해서 ‘대부분 소아암 환자이고 부모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답하자 눈시울을 붉힌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도 높다. 이 부회장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경험도 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술품 기증 방식도 ‘무늬만 기증’이라는 구설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개 예술품을 기증하면 소유권은 국가로 넘어가도 개인 갤러리나 공익재단에 두고 개인이 관리할 수 있다. 고 이 회장이 설립한 리움에 두고 관리해도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가족은 아예 작품을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 보냈고 관리 권한까지 넘겼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고건 당시 서울시장이 이 1990년 7월 서울꿈나무어린이집에서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고건 당시 서울시장이 이 1990년 7월 서울꿈나무어린이집에서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SDS·삼성생명 지분 처분할 수도”

유가족은 2026년까지 매년 2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 부회장 등 유가족이 삼성전자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이 전체의 60% 정도로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8000억원대 현금을 구할 방도가 마땅찮다. 재계에선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유가족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거나 물려받은 부동산을 일부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삼성SDS, 또는 보험업법 개정 여부에 따라 향후 삼성생명 지분이 처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서현, 삼성생명공익재단에 3억 기부 

한편 2일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에 따르면 이서현 이사장은 지난해 삼성생명공익재단에 3억원을 기부했다. 이 이사장은 2011년부터 거의 매년(2014년 제외) 3000만~2억원을 해당 재단에 기부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3월까지 이 재단의 이사장이었다. 방송인 유재석도 2019년에 이어 지난해도 삼성생명공익재단에 1억원을 기부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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