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거래소에 상장 코인 5개, 한국은 178개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01 00:20

업데이트 2021.05.0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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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11면

코인 광풍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4월 14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4월 14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AP=연합뉴스]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3년여 전 악몽을 떠올리면서 ‘패닉셀’(공포 매도)에 나섰다.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까지 목표하고 있다”고 말하자, 공포감에 휩싸인 시장이 패닉셀로 대응하면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폭락한 바 있다.

해외에선 엄격하게 관리·감독
국내 거래소 주먹구구 상장 허다
미국·일본은 정부 승인받아야

캐나다, ETF에 코인 포함 투명거래
미국·영국·프랑스 자본소득 과세

3년의 간극을 두고도 정부가 일관되게 암호화폐 거래소를 겨냥한 건 거래소를 불안정성으로 시장 과열과 투자자 손실을 부추기는 진원지로 봐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4월 말 현재 약 200곳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눈앞의 장사에만 급급해 제대로 된 투자자 보호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예컨대 이들 중 체계적인 보안성을 확보했음을 뜻하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은 건 국내 4대 거래소로 통하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을 포함한 13곳뿐이다.

상장폐지 코인 97개, 2년 새 9배 늘어

대형 거래소라고 해서 우려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시세 변동성이 커 투자자 입장에선 기대 수익률이 높은 알트코인(비트코인 이후 출시된 모든 암호화폐)이 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90%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자, 부실한 코인을 ‘묻지마 상장’했다가 상장폐지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4대 거래소에 신규 상장한 코인은 2018년 116개에서 지난해 230개로 2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허위 공시 등의 하자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상장폐지한 코인은 11개에서 97개로 9배에 이른다. 이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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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알트코인이 이처럼 무분별하게 상장되고 있는 이유는 현행법상 당국에서 관리·감독할 마땅한 근거가 없어 민간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상장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암호화폐 발행 업체 입장에서도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고,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등을 공시할 법적 의무가 없다. 익명을 원한 거래소 관계자는 “내부 심사에 전념하고 있지만 (암호화폐 발행사가) 작정하고 속이고 들어오면 뒤늦게 그걸 알아내는 것 외에 사실상 막을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 발행사는 거래소가 대신 암호화폐를 판매해주는 거래소공개(IEO), 또는 발행사가 거래소에 곧바로 상장해 유통하는 직상장의 방식으로 국내 상장에 나선다.

이때 거래소는 내부 심의위원회를 통해 사업성과 투명성 등을 검토하고 상장 여부를 결정하지만, 발행사가 형식적으로 내는 프로젝트 백서(사업 계획서) 정도가 사실상 자료의 전부다. 중소형 거래소는 내부 심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상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해외에선 실효적인 관리·감독하에 암호화폐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자연히 알트코인도 까다롭게 관리·감독된다. 미국은 2018년부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연방법에 따라 암호화폐 발행사를 규제하고 있다. 불법성이 의심되는 코인이 새로 발행된 경우 각 거래소 대신 SEC에서 직접 조사하고, 법 위반 소지가 있으면 미리 상장을 막는다. 미국 내 주정부들은 암호화폐 유통을 규제한다. 일부 주는 암호화폐 취급 업체에 면허를 발행하고 있다. 일본도 2017년 정부가 승인한 암호화폐만 각 거래소가 상장할 수 있도록 한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해 법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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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결과로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엔 4월 말 현재 58개의 철저히 검증된 코인만 상장돼 거래되고 있다. 유럽 최대 거래소인 비트스탬프에선 21개, 일본 최대 거래소 비트플라이어에선 5개의 코인만 거래 중이다. 국내 4대 거래소가 평균 140개(총 559개)의 알트코인을 취급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엔 178개의 암호화폐가 상장돼 있다.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선 묻지마 상장과 상장폐지 등 한국에서 많이 나타난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캐나다는 상장지수펀드(ETF)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시켜 투자자가 더 투명하게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스위스 정부도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무작정 거래소 폐쇄부터 운운하기보다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든 암호화폐와 거래소를 철저히 제도권에 두는 게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처럼 정부가 거래소에, 거래소가 정부나 발행사에 각각 책임을 떠넘긴 채 투자자 피해를 좌시하는 구조가 아니다.

스위스 정부는 코인 가이드라인 마련

암호화폐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도 시각을 달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부터 국내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국민 모두 연 250만원 이상 수익을 내면 이를 제외한 금액에서 22%(지방세 2% 포함)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정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과세도 문제지만, 시장에선 정부가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암호화폐 투자 수익을 복권 당첨처럼 일시·우발적인 ‘기타소득’으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는 자산으로서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기조이기도 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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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에선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면 암호화폐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므로 과세를 한다면 ‘자본소득’(주식의 경우 세율 20~25%)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경근 전 한국국제조세협회장은 “세율이 높고 낮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암호화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며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건 정부가 암호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암호화폐 제도화 이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영국·프랑스는 자본소득으로, 독일은 기타소득으로 암호화폐 양도차익을 과세하고 있다.

용어조차 오락가락 정부…여야, 법과 제도 정비 촉구
‘암호화폐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고, 인정하기도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그간의 공식 발언이나 정책 등으로 봤을 때 요약하면 이렇다. 이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가 용어의 혼용이다. 예컨대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공식석상에서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며 ‘가상자산’이라고 용어를 통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앞선 26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가상화폐 문제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화폐’라는 말을 썼다. 이 외에도 정부에선 가상화폐·가상자산·암호화폐 등의 용어를 섞어 써 왔다. 인정 여부를 떠나 정부 내에서도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 화폐의 일종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가상자산인지 갈피조차 못 잡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동안,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암호화폐 투자에 적극적인 20~30대 표심을 의식한 듯 연일 비판론을 내놓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산업으로 볼 건지 금융상품으로 볼 건지 개념조차 정립을 안 해놓은 게 아닌가”라며 “기본 방향부터 먼저 세워 달라”고 촉구했다. 이주환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명은 최근 암호화폐 시세조종 행위 등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내용의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도 암호화폐 시장을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으로 봐야 한다며 연일 ‘투자자 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세계는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만 주저하고 있다”며 “이제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한다는 자세로 제도화하고 시장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과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암호화폐 투자 양도차익 과세에 대해서도 적용 시기(내년 1월) 유예 여부 등에 대한 각계 의견을 다시 듣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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